헌법재판소 탄핵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막장 변론’에 나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탄핵 인용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보자는 취지로 보이는데, 이것 이상의 정치적 맥락이 감지되기도 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2일 변론에 나선 대통령 대리인단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탄핵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훼손하려고 시도했다. 이들 소속인 김평우 변호사는 주심인 강일원 헌법재판관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을 향해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을 내놓았다. 이들은 급기야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리인이나 다름없다”고 폄하하면서 기피신청을 제출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심리 지연으로 파악해 각하했으나 전무후무한 재판부 모욕 행위에 파장은 확대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러한 ‘막장 전술’은 결국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대한 ‘불복’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3일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YTN라디오와의 전화연결에서 “어떤 법정에서도 재판관에 대해서 인신 모독에 가까운 언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헌법재판관들에 막말에 가까운 표현을 한다는 건 이 재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용주 의원은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러한 행태를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인용 직전 자진 하야를 선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어쨌든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마저도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언론 및 야당과 손을 잡은 것이라는 음모론에 불을 붙이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조짐은 지난 9일 정기승 전 대법관 등 9명의 원로 법조인들이 조선일보에 탄핵심판 반대에 대한 의견 광고를 게시한 것에서도 감지됐다. 이들은 한국의 경우 탄핵소추만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제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무리한 방식으로 탄핵소추안을 의결해 문제고, 헌법재판소가 8명 만으로 탄핵 인용 결정을 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김평우 변호사가 22일 탄핵심판정에서 내놓은 논리를 세련되게 다듬은 형태다.

22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이 끝난 후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 김평우 변호사가 헌법재판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대리인단과 이른바 ‘원로 법조인’들의 이런 움직임은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상황 자체를 ‘기득권의 음모’로 보는 소위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논리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이 뒷받침 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훨씬 약화된다. 이러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인용 결정 전에 하야를 선택할 가능성이 소폭 높아지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불소추특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하야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으나, 이는 탄핵이 기각되는 경우에 성립되는 주장이다. 탄핵이 인용된다면 어차피 그 순간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불소추특권의 수혜자가 될 수 없다. 탄핵 인용 결정에 승복해 이후 절차를 따르느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불공정하다는 취지로 불복하며 하야를 선언하느냐의 문제인데, 순전히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정치적 효과를 놓고 보자면 후자가 유리한 게 사실이다.

최근 보수세력 일각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사법적 책임의 일부 면제를 놓고 ‘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판단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이 승인되지 않을 경우 ‘자연인 박근혜’를 수사해야 하는 주체는 검찰이 되는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르게 돼있는 현행의 제도를 고려하면 검찰이 선고 직후 신속히 수사에 나설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한 때의 여론을 신경쓰면 되는 특검과는 달리 검찰은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대권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결단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분명하고도 원칙적인 사법처리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위와 같은 이유로 특검의 수사 기간이 연장될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은 거의 ‘물 건너 간’ 상태라는 것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신청에 대한 답변을 차일 피일 미루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법을 근거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있는 특검법 개정안을 직권상정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바른정당 권성동 의원은 교섭단체 전부의 합의가 없으면 특검법 개정안을 본회의로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권성동 의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내놓고 있다. 23일자 한겨례 지면에 실린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의 칼럼에 그런 주장이 실려 있다. 서복경 교수는 이 글에서 국회법에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로 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 상임위 안건 상정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법사위원장은 ‘모든 교섭단체 간사들의 합의’라는 위원회의 아름다운(?) 관행을 안건 상정 거부 이유로 들고 있는데, 관행이 규칙의 상위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정치적 문제는 남는다. 국회 법사위원장이 탄핵소추위원장을 겸임하기 때문이다. 만일 권성동 의원이 주도해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을 골자로 하는 특검법 개정안이 처리되는 모양새가 된다면 ‘막 나가는’ 대통령 대리인단이 어떻게 나올지는 그야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검사가 형사소송법을 고친 격”이라고 주장하며 탄핵심판의 공정성을 다시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통령을 감옥에 잡아 넣고야 말겠다는 음모”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성동 법사위원장(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이 23일 오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탄핵 인용의 결정 시기를 전후해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결집하고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여기에 여당인 자유한국당이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특검 연장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MBC 청문회’를 반대하며 국회를 사실상의 마비 상태로 이끌었다.

자유한국당이 그간 문제삼아온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환노위에서 여야 간사의 합의 없이 MBC 청문회 등의 일정을 의결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이유로 모든 상임위를 보이콧하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여야가 모여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상황이지만, 자유한국당의 이 선택으로 국회 법사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찬성하지 않으면 특검법 개정안이 법사위에 상정될 수 없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MBC가 ‘MBC 청문회’를 막아준 자유한국당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탄핵심판에서 박근혜 대통령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보도를 이어가게 된 것은 덤이다. MBC의 이러한 보도는 자칭 ‘애국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22일 야당 의원들은 특검 수사기간 연장 승인을 촉구하기 위해 황교안 권한대행을 아예 찾아갔다. 그러나 해당 시각 황교안 권한대행은 규제개혁국민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규제개혁국민토론회에서 소상공인들과 직접 소통하는 모습 등을 과시하며 ‘대선 출마’ 가능성을 높였다. 결과적으로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의 이런 행보가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을 묶어놓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강경 보수층을 제대로 묶어놓기만 하면 자유한국당에서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밖에 없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지난 16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에 대한 항소심 무죄 판결 이후 대선 출마를 시사한 상태다. 국민일보 등 보도에 의하면 김태호 전 경남지사도 대선 출마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경북으로 완전히 축소된 지역기반을 부산경남으로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모양새다.

이들은 결코 이번 대선에서 대권을 잡을 수 없지만 적어도 이게 ‘야당’으로 5년을 견디는 자산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즉, 우리가 지금 보는 사태의 본질은 기득권이 “대한민국과 헌법을 지키자”고 늘상 말해온 것과는 달리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제도와 체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할 수 있다는 기만성이다. 이러한 기만적 권력이 수십 년 간 이 나라의 기득권으로 행세해왔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이러니 한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다는 사람까지 ‘대청소’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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