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는 목요일에 강의가 있어서 노량진에서 천안행 전철을 타고 병점(경기도 화성시)을 향한다. 그 길에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살았던 안양이 있다. 이미 사반세기 전인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때는 기자도 되고 싶었고, 작가도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 생각했던 학교는 신촌에 있는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였다. 기자를 꿈을 꾸던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무슨 결과가 있었던가. 어찌 보면 그 꿈에 조금 근접한 것 같으면서도 부끄러워지곤 한다. 사실 나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결코 부지런하게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10월 8일) 아침 출근길에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었다. 마지막 순서에 조정래 선생이 나왔다. 언론인 손석희의 내공과 조정래 선생의 내공이 결합되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포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언어의 향연에서 몇 마디를 가져와 본다.

▲ 도서‘황홀한 글감옥’표지

조정래 : “인생은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고, 40년 동안 문학을 해오면서 인생을 무엇일까 어떻게 살까를 생각했다... 인생의 방법론으로 가장 상식적이고 유치할 수 있지만 끝없이 노력하라 그러면 네 개성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생각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이고 열매를 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감동을 전제로 한다. 문학은 감동을 줘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깨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8시간 노동하는 일반인들보다, 작가는 그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평균 15시간 이상 글을 쓰는 노력을 했다. 20년 동안 술 한 잔 안 마시고 노력했다”

“20대는 특이한 세대가 아니고, 누구나 거치는 일생의 한 고비일 뿐인데 그때 삶의 고비나 고민을 빨리 받아들여서 자기화, 육화하는 이들이 더 큰 열매를 딸 수 있다. 요즘 젊은이가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성급한 것이고, 20대에 절망과 좌절을 맛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곳이다”

손석희 :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싫어합니다.(웃음)”

조정래 : “옛날을 모르면 오늘날 삶의 가치를 모른다.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어른들의 덕목이다”

약간 문구를 수정해서 옮겨서 그 의미가 잘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인터뷰는 듣기에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듣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프로그램의 10월 8일자 3, 4부의 뒤에 8분쯤을 들으면 된다.

이 인터뷰의 배경은 조정래 선생이 최근에 펴낸 ‘황홀한 글감옥’(시사인북 간)이다. 책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 250여 명에게서 ‘평소 조정래 선생에게 궁금했던 질문’ 500여 개를 받았고, 이들 질문 가운데 84개 질문을 추려 그에 답하는 형식이다. 앞에는 대학생의 소중한 질문이 있고, 그 아래 조정래 선생의 답변이 이어진다. 작품, 인생관 등에 관한 질문이 있고, 답변은 차분히 삶의 본질적인 면으로 접근해 간다.

책의 첫머리에는 고향이자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에 세워진 조정래 문학관의 입구에 있다는 원고지 앞 사진이 차지하고 있다. 그 원고지를 보면 정말 역설적으로 표현한 ‘글감옥’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 원고지들이 감옥의 창살이라면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할 감옥임에 틀림없다.

이번 책에서 그는 대하소설 3부작 창작 에피소드와 지인관계 등 삶의 다양한 편린들을 다정하게 기술해 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기록하고자 했던 진실의 가치들과 기록의 여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또 시인인 부인 김초혜 여사와의 사랑 등도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또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시키면서 깨닫게 하고 싶었던 “매일 지치지 않고 미련하게 하는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나타내는지 절절히 깨달았으리라 믿는다”는 신념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달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작가의 잡문(?)은 소설처럼 유장하지도 부드럽게 넘어가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의 대하소설에는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인간연습’ 등 단편이나 산문집에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책을 통해 ‘어떤 행동을 해도 이치에 거슬림이 없다’는 ‘불유구’에 근접해가는 70살의 풍모와 오롯한 근기를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사실 내가 만나는 젊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끼는 일이 많다. 우선 독서를 통한 광범위한 교양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이 염원하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입성의 꿈이 설사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 같지 않다는 안타까운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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