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분단 당사자다. 분단으로 빚어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직접 해결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60년 분단 문제 해결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분단으로 득을 보고 있는 국가나 세력의 기득권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야 한다. 북삼각 남삼각 동맹의 대결의 역사가,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의 역사가, 남북 지배세력의 통치의 역사가 그렇다. 분단 기득권을 해소하는 것이 분단 문제 해결의 첩경이다.

조선일보는 7일자 사설 ‘중국이 건설하는 압록강 대교의 정치적 의미’에서 “중국은 북핵을 없애기 위해 북한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중국이 북한을 자신의 손안에 둔 채로 북한 체제를 존속시켜서 한반도를 지금 이대로 현상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국익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판단했다. 대체로 틀리지 않는 지적이다. ‘한반도를 지금 이대로 현상 유지하는 것’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누구인지를 새삼 거론할 일은 아니다.

북핵이 동북아의 키워드로 된 건 미국이 북을 적대시한 데 따른 결과이지만, 분단체제 옹호 세력들 간의 오랜 대결의 산물이기도 하다. 북은 고난의행군을 감내하면서도 자존심과 체제 유지를 선택했다. 미국은 거침없이 악의축으로 내몰고, 레짐 체인지를 구상했다.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북미 간에 또는 4자, 5자, 6자의 다자회담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분단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분단은 일차적으로 남북 당사자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안타깝지만 남은 분단의 당사자지만 당사자로서의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고, 정권이 바뀐 후부터는 분단 문제는커녕 북핵 문제 해결의 전략과 전술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 조선일보 10월7일자 사설, 북미회담 관련 두 개의 사설을 게재했다.

이런 조건 위에서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 이번 국면을 이끈 주인공은 북과 중국이다. 북중 회담에 걸린 긴장 정도를 따지자면 미국이 가장 크고, 남은 그 다음이고, 러시아와 일본은 들러리 수준으로 정돈된다.

북중회담은 북미 양자회담을 앞둔 시점에 절묘하게 자리잡았다. 북은 세 가지를 얻었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점을 환기, ‘북핵’ 해결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대외 외교적 명분을 얻었다. 다자회담을 조건부로 열어둠으로써 미국을 불러들여 적대정책의 전환을 강제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경제 지원을 확보함으로써 유엔 안보리 1874호의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한편 중국은 북과의 정치,경제,군사적 결속을 강화하는 소득을 얻었다. 함북 무산철광, 양강도 혜산동광, 평북 용등탄광 등 주요 광산 채굴권은 일찌감치 중국의 손으로 넘어갔고, 황해 해상 유전 탐사권도 일부 해역 조업권과 압록강 개발권도 중국이 가져갔다. 식량.에너지 원조에다 IT분야 원조협정도 체결됐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를 열거하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원자바오는 고위급 교류의 지속과 주요 문제의 소통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북에 대한 경제 지원을 하면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조건부) 6자회담의 발언을 끌어내 정치적 명분도 챙겼다.

이 국면은 미국이 북을 방문하는 다음 일정과 맞물려 일단락 될 텐데, 북미 양자회담은 악화든 양화든 북핵 문제 해결의 굵직한 획을 그을 것으로 관측된다. 남은 이 와중에 ‘그랜드바겐’ 공방에 빠져 있으니 참으로 측은지심을 부른다.

조선일보는 7일자에 ‘중국이 건설하는 압록강 대교의 정치적 의미’ 외에도 ‘6자회담 앞선 북미대화는 짧을수록 좋다’는 사설을 게재해 조급한 속내를 드러내놓았다. 중국이 북에 “선 원조약속이라는 보장을 해주는 것은 지난날 북한 다루기의 잘못을 또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불평하고 6자회담 참가국들의 대북 협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미북 대화에서 ‘포괄적 패키지’의 내용을 선보일 수 있겠지만 모든 구체적 협상은 6자회담으로 넘겨야 한다. 미북대화는 짧을수록 좋다”는 희망사항을 늘어놨다. 북미 양자협정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북미관계 정상화 등의 현안이 일정한 합의에 도달할 경우, 남으로서는 ‘그랜트바겐’은커녕 이후 남북관계 변화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 상실이 예고된다. 미국이 현재의 적대정책과 유엔 제재를 유지하는 가운데 압박을 통한 대북정책 강행 시나리오에도 차질이불가피해진다.

동아일보도 사설 ‘중국, 북한 비핵화 더 멀어지게 하나’에서 유사한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이 북한의 조속한 6자회담 복귀 약속을 받아내는데 실패했다 ... 6자회담 의장국이란 위상이 무색하다”며 불평하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북이 미국과의 양자회담에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인받게 되면 “6자회담은 열린다 하더라도 북미 회담의 들러리 회담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북미대화 추인용 6자회담 안 된다’를 실었다. 조선 동아와 비교하면 톤이 살짝 다르다. 가령 “경위야 어떻든 북한의 절대 권력자가 (조건부 6자회담 참여라는) 진전된 입장을 밝힌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라는 언급도 등장한다. 하지만 남의 대북정책 기조를 강조하는 데서는 차이가 없었다. 중앙일보는 “‘압박과 대화’라는 투 트랙 정책은 최소한 북한의 핵포기가 되돌릴 수 없다는 상황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랜드바겐 논란을 의식해 이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북이 중국과의 회담에서 세 가지를 얻는 동안, 남은 ‘비핵개방3000’에 포장만 바꾼 ‘그랜드바겐’ 공방에 빠져 있었다. 북이 세 가지를 얻어가자 조선.동아.중앙일보는 ‘안 된다’만 외치며 안절부절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딱 여기까지다.

경향신문은 사설 ‘김정일-원자바오 회담 후속 노력 중요하다’에서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 전환을 할 때”라고 충고했다. 한겨레도 사설 ‘북중 합의로 한계 드러낸 대북 압박정책 전환해야’에서 “국제공조를 통한 압박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새로운 변화에 맞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짜야 한다”고 요청했다.

북핵 뿐 아니라 분단 문제 해결 당사자로서의 지위와 이니셔티브를 얻는 방법,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는데, 분단체제 ‘기득권’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게 좀처럼 안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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