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듬체조의 간판 손연재가 마침내 은퇴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손연재의 소속사인 ‘갤럭시아SM’은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손연재는 오는 3월 열리는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동시에 현역선수로서도 은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손연재는 거의 매 시즌을 시작하는 대회로 삼아왔던 모스크바 그랑프리 대회에 불참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은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고, 이번에 예상대로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대한체조협회가 손연재 측에게 오는 8월에 있을 하계유니버시아드까지만 현역 선수로 뛰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대해 손연재 측이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졌지만 결국 손연재는 더 이상의 선수생활 연장 없이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리우올림픽이 현역 마지막 무대가 된 '체조요정' 손연재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사실 이번 은퇴 발표는 당초 예상보다 다소 늦춰진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손연재 스스로 작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는 점을 공공연하게 밝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육계나 언론 모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곧바로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던 김연아와 마찬가지로 손연재 역시 리우 올림픽을 마치고 난 직후 현역 은퇴 의사를 밝힐 것으로 예상했으나, 손연재는 작년 8월 열린 리우 올림픽을 4위로 마친 직후 인터뷰에서 ‘은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갤럭시아SM은 은퇴 이후 손연재의 계획과 관련, “리듬체조를 떠나지만 대한민국 리듬체조가 세계 속에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며 “손연재의 후배들이 글로벌하게 대한민국 리듬체조의 명예를 높이는 일에 손연재 선수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바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탐색해 보겠다”라며 한국 리듬체조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 “운동선수로서의 삶은 이제 마무리하지만 또 다른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새로운 배움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분명한 것은 학생인 만큼 학업에 열중하면서 손연재 선수가 리듬체조 이외에 어떤 재능이 있는지도 찾아보려 한다”고 전했다.

손연재 인스타그램 캡처

현재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손연재는 대학생으로서 남은 1년간 학업을 마치고 중국이나 미국에서의 지도자 생활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손연재는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으면서 얼마 전까지 미국 현지의 어린 리듬체조 선수들을 잠시 지도했고, 그 모습이 손연재의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손연재는 공식적인 은퇴를 발표한 이날 자신의 SNS에 비교적 긴 메시지를 남겼다.

“끝나서 너무 행복했고 끝내기 위해서 달려왔다. 그래도 울컥한다. 아쉬움이 남아서가 아니다.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는다. 17년 동안의 시간들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었고 내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성장했는지 알기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는 단순히 운동만 한 게 아니다. 더 단단해졌다. 지겹고 힘든 일상들을 견뎌내면서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 결과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당장이 아닐지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노력은 결국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겼다.

끝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하고 그 어떤 누구보다도 내 자신을 믿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부터 모든 것들이 새로울 나에게 리듬체조를 통해 배운 것들은 그 어떤 무엇보다 나에게 가치 있고 큰 힘이 될 거라 믿는다. 은은하지만 단단한 사람이 화려하지 않아도 꽉 찬 사람이 이제는 나를 위해서 하고 싶은 것들 해보고 싶었던 것들 전부 다 하면서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와 같이 걸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이렇게 ‘선수’ 손연재와의 작별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리듬체조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에 숱한 월드컵 메달을 가져다 안겼고, 이른바 ‘손연재 키즈’로 불리는 리듬체조 꿈나무들을 유산으로 남겼다.

하지만 손연재를 떠나보내는 한국 리듬체조는 손연재 덕분에 누렸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 하고 차갑고 어두운 터널을 만난 양상이다.

손연재의 볼 연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천송이, 이나경, 김한솔 등 손연재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선수들이 있지만 아직 국제무대에서 자신이 존재감을 드러낼 만한 실력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정조준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후배 유망주들의 점수 수준은 아직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차세대 선두주자로 평가 받고 있는 천송이는 아직은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은 당분간 어떤 국제대회에도 한국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다 천송이는 모교인 리듬체조 명문 세종대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학교를 그만 뒀다. 모교 세종대와 체조협회의 갈등으로 세종대 리듬체조팀이 작년 전국체전과 국내 대회 출전을 거부, 정상적인 대회 출전과 훈련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작년 전국체전 때는 리듬체조 일반부 경기가 공식 경기가 아니라 메달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 번외 경기로 열리는 일이 벌어졌다. ‘기록경기는 출전 팀이 5개 시도가 되지 않으면 취소한다’는 전국체전 경기운영 내규에 따른 결정인데, 각 시도의 합의가 있으면 열릴 수 있지만, 합의가 최종 무산되면서 번외 경기로 결정됐다.

그 결과 이번 리듬체조 일반부에는 국내 리듬체조 2인자 천송이 선수를 비롯해 4개 시도, 다섯 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손연재 은퇴 이후 한국 리듬체조가 직면하게 될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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