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아르바이트로 월세만 내며 레시피 연구…
“설마 이걸 팔거냐던 친구, 이제 경남에서 제일 맛있대요”

[미디어스=박양지 기자] “정말이지 요리의 ‘ㅇ’자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가게를 계약한 뒤, 목돈이 없어 월세는 물론이고 보증금까지 분할해서 내야 했을 정도예요. 셋이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다시 월세를 내는 생활을 꼬박 1년 했어요. 그렇게 레시피 연구와 ‘제대로 맛 내기’에만 매달려서, 지금은 훨씬 큰 가게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7일 저녁, 울산 중구 성남동 강변버스정류장 뒤 포차거리에 위치한 브런치 가게 '제이비'에서 맏이 현교 씨가 퀘사디아를 만드는 데 한창이다.

정현교(30‧남), 정지현(28‧여), 정진교(26‧남) 삼남매가 한창 영업 중인 울산 중구 성남동의 브런치 가게 ‘제이비’. 들어서자마자 구김살 없는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쌀쌀한 날씨와는 사뭇 다른 따뜻한 기운이 풍겼다. 더 큰 공간으로 옮길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사장님들’의 얼굴엔 보람과 기대감, 부푼 열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작년 11월 3일에 영업을 시작하고 약 4개월 만의 놀라운 성장이다. 시행착오 없이 승승장구했을 것만 같지만 이들이 꺼내놓은 이야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창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건 둘째 지현 씨. 3~4년 전쯤 군대에 간 친구를 면회하러 강원도에 갔다가 한 브런치 가게에 들어갔던 게 계기가 됐다. “아침에 싱싱한 샐러드와 과일이 고파 찾은 곳에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는 지현 씨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정말 맛있었어요. 이 맛을 꼭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내가 받은 느낌을 다른 사람도 받았으면 좋겠고, 내가 만든 걸 누가 먹고 지금 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그 때 강렬하게 받았어요. 그 생각이 울산에 와서도 잊히지 않아, 결국 브런치 가게 창업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삼남매가 1년을 꼬박 매달린 끝에 완성된 '제이비' 표 퀘사디아.

하지만 창업은 그리 꿈만 같지 않았다. 지현 씨가 포문을 열고 오빠와 동생이 물심양면으로 돕기에 나섰지만, 대한민국 청년에게 창업 자금 마련이란 쉽지 않은 일. 삼남매는 목욕탕 청소, 패스트푸드 배달, 택배 상하차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뛰어다녔지만 적당한 자리를 찾는 것부터 일이었다.

겨우 구한 자리는 길거리 포차 형식의 가게. 수제버거, 샐러드 등 하고 싶은 음식은 너무 많았지만 공간이 턱없이 좁았다. 그나마도 여름엔 신선한 재료를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어 하루만 지나면 상했고, 박스 채로 버리기 일쑤였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다 보니 레시피 연구에도 제약과 시행착오가 많았다. 지현 씨는 “나는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맛을 본 친구는 ‘야, 너 이걸 판다고?’라고 하더라. 진짜 충격 받았다. 사실 지금도 그 말이 계속 생각난다”며 웃었다.

이렇듯 1년 꼬박 장사 한 번 하지 못하고 월세만 내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세상에, 남 좋은 일만 시킬 거면 왜 하냐”는 타박을 했지만 그래도 삼남매를 믿고 지원해줬다.

'제이비'의 또다른 대표 메뉴 감자튀김. 독특한 치즈 시즈닝 덕분에 인기가 높다. "치즈 시즈닝만 따로 팔 수 없냐"는 문의도 받는다고.

그렇게 친구의 독설과 엄마의 믿음을 밑거름 삼아 연구를 거듭한 끝에, 기름기와 조미료는 줄이고 담백함은 살린 ‘제이비’표 퀘사디아와 감자튀김을 대표메뉴로 만들었다. ‘메인은 담백하게, 소스는 독특하게’라는 특징도 살렸다. 이 거리의 주요 고객층인 젊은이들이 ‘밥을 먹기는 부담스럽고 거르기엔 아쉬울 때’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메뉴들이다. 청년의 입장을 가장 잘 아는 건 청년이라고, 수요를 잘 파악해 틈새시장을 공략한 셈.

그렇지만 마냥 청년들만 오는 건 아니다. “퀘사디아가 뭐예요”라고 묻던 어르신들이 맛을 보고 “의외로 괜찮다”며 호평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오빠 현교 씨는 귀띔했다.

치즈 시즈닝도 남다르다. 시중 제품에 지현 씨의 연구가 담긴 레시피를 더해 이곳만의 시즈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런데도 손맛 좋은 엄마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단다. 가게를 옮기면 샐러드, 리조또 등 하고 싶은 메뉴도 많다. 둘째 지현 씨는 커피도 제대로 배우고 싶어 가게도 운영하면서 카페 아르바이트까지 할 계획이라고.

“장사하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체인점도 괜히 체인점이 아니구나 싶었어요”라며 혀를 내두르는 삼남매. 그럼에도 “우리처럼 음식점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은 친구나 손님의 직설화법을 무서워하면 안 된다”며 “귀 기울이고 경청하는 자세가 더 큰 미래를 바라보게 해 줬다”고 말하는 ‘삼남매 사장님’의 모습에선 식지 않는 열정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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