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생동성 연애> (2월 16일 방송)

MBC <세 가지색 판타지-생동성 연애>

경찰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다음 날, 함께 고시를 준비하던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 고시원에서도 쫓겨났다. 편의점 창고에서 쪽잠을 자다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잘렸다. 고시생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단 며칠 사이에 모두 겪었다.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전형적인 설정이다. MBC <생동성 연애>의 소인성(윤시윤)은 그런 인물이다. 게다가 덥수룩한 머리와 뿔테 안경은 누가 봐도 ‘나 고시생 혹은 취준생이에요’라는 걸 알 수 있는 비주얼이다. 이토록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설정인데도 자꾸만 소인성에게 눈길이 간다.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아마도 배우 윤시윤의 힘일 것이다. 윤시윤은 <생동성 연애>에서 처음으로 현실에 발 디디고 있는 생활밀착형 캐릭터를 맡았다. 특히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 순간은 자칭 “우주 최강 찌질이” 그 자체였다. 입 안 가득 삼각김밥을 문 채 여자 친구가 떠나가 버린 방향을 쳐다보면서 초조하게 제자리걸음 중인 두 발. 지금 청춘의 불안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윤시윤은 굉장히 처절하게 이를 표현했다.

MBC <세 가지색 판타지-생동성 연애>

만약 윤시윤 혼자였다면, 우울한 고시생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소인성의 친구 조지섭(강기영) 덕분에 ‘멀리서 보면 굉장히 우울한데 가까이서 보면 웃긴 현실’을 표현해냈고, 이것이 <생동성 연애>의 생동감을 살려냈다. 분명 그들이 처한 현실은 어둡고 우울한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개그콘서트> 급이었다.

둘 다 경찰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후 고시원 근처 공터에 나왔다. 지섭은 인성의 저질 체력을 보더니 “이게 경찰 체력이니? 범인이 널 잡겠다”고 구박했고, 인성도 질세라 “넌 면접에서 떨어진다. 이게 경찰 얼굴이냐? 범인 얼굴이지”라고 받아쳤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던 두 사람은 고깃집에서 무료로 주는 아이스크림을 당당하게 가져오면서 “조만간 고기 먹으러 올게요”라고 사장과 ‘딜’을 했다.

인성이 소심한 청춘을 대변한다면, 지섭은 능글맞은 청춘을 대변한다. 두 청춘이 보여주는 찰떡궁합은 이 드라마를 극도로 우울하게만 비춰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주의 Worst: 정체성 없는 올드 예능 <하숙집 딸들>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하숙집 딸들>

프로그램 제목부터 불편하다. ‘하숙집’이라는 올드한 설정은 둘째 치더라도, ‘딸들’이라니. 연기는 베테랑이지만 예능은 새내기인 여배우들을 섭외해놓고 기껏 ‘딸들’이라는 굴레에 가둬놓았다. 그것도 남자 하숙생들로부터 보호해야 될 존재로 말이다.

게다가 섭외된 다섯 명의 여배우 캐릭터가 모두 겹친다. 이미숙, 장신영, 이다해, 윤소이, 박시연. 굉장히 강한 캐릭터들만 모았다. 무섭고 센 언니들로 알려졌지만 사실 알고 보면 사연 많고 눈물 많은 털털한 사람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할 것 같은 예감이 첫 회부터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조합을 만들 수가 없다.

지난 14일 첫 방송된 KBS2 <하숙집 딸들>은 엄마 이미숙과 네 딸 장신영, 이다해, 윤소이, 박시연이 남자 하숙생을 받는 콘셉트의 예능이다. 콘셉트부터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딸들만 모여 사는 하숙집에 남자 하숙생이 입주하는데, 엄마와 딸들이 하숙생의 모든 것을 철저히 검사해서 입주를 허가한다는 운영 지침.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장면들이다. 예능 설정이라고 감안하더라도 재밌지 않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하숙집 딸들>

가장 늦게 온 막내 윤소이를 골탕 먹이기 위한 맏언니 이미숙의 군기 잡는 몰카, 병뚜껑 날리는 게임, 빨간 내복 입기 벌칙, 남자 하숙생의 가방 검사, 하숙집 입주를 위한 긴 젓가락으로 자장면 먹기 테스트. 게임조차 올드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이다. 올드하고 촌스러운 설정이야 차후 충분히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왜 하숙집이라는 공간을 설정했고, 그곳에 남자 하숙생을 들이는지, 이런 것을 통해 어떤 재미를 뽑아 내려는지를 모르겠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다해 집들이 중간 중간 나오는 하숙집 장면을 봐도, 도통 이 프로그램의 정체를 모르겠다. 한 공간에 모여 사는 개성 강한 여배우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인지, 하숙집 딸들과 남자 하숙생이 한데 어우러져 각종 게임을 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지. 아무리 첫 회라지만, 이렇게 그림이 안 그려지는 예능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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