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전영일 전 KBS 수신료 팀장은 30일 KBS사내통신망(Kobis)에 이병순 사장 1년을 평가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미디어스는 본인의 동의 하에 관련 글을 게재합니다.

KBS는 지난 2001년(박권상 사장 재임) 시사저널의 언론매체관련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조선일보를 누르고 영향력 1위에 오른 후, 2008년까지 각종 여론조사(일반국민대상 및 전문가 집단 )에서 8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병순 사장 취임 1년째인 지난 8월 시사저널의 여론조사에서는 조선일보에 1.1%로 앞서 간신히 1위를 유지했고(2008조사에서는 9.8%우위), 같은 8월의 한국기자협회의 여론조사에서는 8년 만에 다시 조선일보에 1위를 내주고 2위로 밀려났다. 지난 8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였던 KBS의 영향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추락하는 KBS의 국민 신뢰도

▲ 국민과 전문가들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 2004년에서 2009년까지

KBS가 지난 2001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1위를 차지한 후, 신뢰도 1위에 오른 것은 2003년(정연주 사장 재임)말이다. 그 후 KBS는 2008년 6월까지 5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신뢰 받는 언론사'로 선정됐다.

2004년 탄핵방송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족벌신문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일부 보수시민단체들이 수년간 KBS가 편파적이라고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시청자들은 변함없이 공영방송 KBS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최고의 언론사로 꼽았던 것이다.

그러나 KBS는 2008년 8월27일 이병순 사장 취임이후 1년이 지난 2009년 들어 실시된 4차례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1위의 자리를 MBC와 한겨레에 내주었다. 5년간의 아성이 무너진 것이다. 4개 기관의 여론 조사 중 2개 기관의 조사에서는 2위를 지켰지만 2개 기관의 조사에서는 3위로 전락하였다. 이병순 사장 취임한지 불과 1년 만에 국민과 시청자들은 KBS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KBS의 신뢰도 추락에 대한 원인은 바로 한국기자협회의 여론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전국기자들(여론조사 응답자)의 54.8%가 KBS가 이병순 사장으로 교체된 이후, KBS 보도가 불공정해졌다고 답변했다. 불과 3년 전인 2006년 7월 KBS 기자협회의 조사 결과에서는 KBS가 ‘정치’나 ‘자본’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각각 62.7%와 67.1%로 나타났다. < 참조 : 2007~8 KBS수신료 현실화 추진 활동백서, 첨부 CD 9번 항목 , KBS 5년 변화와 성과, 2페이지>

2003년~2008년 비판의 성역이 없었던 KBS

▲ 2002년-2006년 언론의 보도 대상별 비판적 보도의 비중
KBS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국민 신뢰도 1위를 차지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KBS가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2007년 3월 <한국홍보학회> 특별 세미나에서 숙명여대 조정렬 교수는 2002년부터 4년여 동안 정부·기업·비영리 단체에 대한 부정적 보도에서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매체는 동아일보(49.9%), KBS(46.9%), MBC(45.9%), SBS(45.6%), 중앙일보(38.6%), 조선일보(38.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KBS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비판의 성역이 없는 방송임을 이 같은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병순사장이 취임한지 1년이 지난 오늘 추락하는 “KBS의 대국민 신뢰도”는 KBS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이병순 사장

이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병순 사장은 KBS신뢰도와 영향력의 추락이라는 불명예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기자협회보 9월23일자 기사(KBS 신뢰도 안 떨어져. 김성후 기자)와 오마이뉴스의 9월25일자 기사(이병순 흑자경영에 숨은 검은 그림자. 장윤선 기자)에 의하면 9월23일 국회 문방위에 출석한 문광위원들의 KBS신뢰도의 추락에 대한 질문에 대해 “취임 전과 비교해 신뢰도에 흠이 났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한국언론재단이 격년으로 신뢰도 조사를 하는데 2006년, 2008년에 이어 2010년에 시행되는 언론재단의 조사가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그 결과를 기대한다”는 식으로 최근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KBS가 공식적으로 인용했던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를 분석해 보면 한국언론재단의 조사와 타 언론기관의 여론조사 결과에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자체조사가 아니라 “신뢰할 만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서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순 사장이 2009년에 실시된 4차례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1년 후인 2010년에 실시될 한국언론재단의 여론조사의 결과는 “KBS에게 유리하게 나올 것?이라는 아전인수식의 발언”이 시청자를 우습게 보는 것인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언론사의 영향력과 신뢰도

일반적으로 언론사를 평가하는 큰 두 개의 기준은 ‘영향력’과 ‘신뢰성’이다. 지난 10여 년간 영향력 1위를 다투는 언론사는 KBS• MBC•조선일보였다. 특히 KBS가 조선일보를 누른 2001년 이후에는 대부분의 여론조사결과에서 KBS가 독보적으로 1위를 유지했고 2위의 자리는 조선과 MBC가 ‘업치락, 뒤치락’하며 경쟁을 벌였다.

‘신뢰도’는 2003년에서 2008년까지 5년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KBS가 연속 1위를 차지했고 MBC가 2위를 고수했다. 조선일보는 3위에서 5위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지난 5년간 KBS가 ‘영향력 1위’와 ‘신뢰도 1위’라는 영광을 누려왔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KBS는 누가 뭐래도 시청자와 국민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기관이고 명실상부한 ‘국민의 방송’이었다.

과거 80년대 ‘편파·왜곡보도’로 국민의 돌팔매를 맞던 시절의 KBS를 되돌아보자. 권력의 나팔수였던 KBS가 ‘영향력과 신뢰도 1위’의 자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KBS가 80년대의 악몽의 터널에서 빠져 나와 ‘영향력과 신뢰도 1위'라는 자랑스러운 ‘국민의 방송 KBS’가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KBS인들의 투쟁이 있었던가. 지난 5년간의 ‘KBS의 영광’은 90년 4월 KBS방송민주화 투쟁이후 십여년간, KBS의 오천여 종사자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한 성과’였다.

또한 이 성과는 이병순 사장 이전의 KBS가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와 시스템을 유지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20여 년간 KBS인의 피와 눈물로 쌓아 올린 KBS의 자랑스러웠던 공든 탑이 ‘73년 공사 창립 이후 최초의 공채 출신 사장’이라고 자랑하는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지 1년 만에 무참히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임기 2년차에 접어든 이병순 사장의 무모한 행보는 거침이 없다. 수신료를 올리겠다고 하면서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다. 이병순 사장과 경영진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비위만 맞추면 수신료는 저절로 오를 수 있다는 엄청난 착각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KBS 제20기 시청자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다. 시청자위원회는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로 구성되어야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큰 무리 없이 그렇게 구성되고 운영돼 왔다. 그러나 이번 시청자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친정부, 회색단체, 보수인사 일색이라는 야당과 시민언론단체의 비판을 모면할 길이 없다. 이병순 사장과 경영진이 진정 수신료의 현실화를 염두에 두고 국민여론을 존중하였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방송 ‘시사 360’의 폐지는 무얼 말하는가? 이병순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무리하게 폐지한 ‘시사 투나잇’의 후속타로 힘겹게 살아남은 이 프로그램은 미흡하지만 이병순의 KBS에 남은 마지막 권력비판형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생방송 시사 360’의 폐지는 권력의 뜻을 충실히 받들어 명목상이나마 유지되던 공영방송의 역할조차 아예 포기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더 이상 KBS의 5천 사원들이 이병순 사장의 이런 횡포를 견제하지 못한다면, KBS는 다시 80년대 ‘권력의 나팔수’가 되거나, ‘비판기능이 거세된 무기력한 일본의 NHK’로 전락하거나 둘 중에 하나의 길을 갈 것이다. 길지 않은 세월 자랑스러웠던 KBS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가슴 아프고, 폭풍처럼 다가 올 KBS의 주인인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들의 분노와 심판’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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