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폐쇄적 공간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스티브 맥퀸의 <대탈주(1963)>부터 <쇼생크탈출(1994)>까지 탈옥의 감동을 다룬 영화들이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감옥을 배경으로 시즌 5까지 이어간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도 있으니까.

그래서 상고를 포기하고 '탈옥'을 기획하기 시작한 박정우(지성 분)의 결심으로 이제 <피고인>은 본격적으로 '프리즌'을 '브레이크'하고, 바깥세상에서 통쾌한 복수극을 벌여나가나 했다. 그런데 웬걸. 16부작의 딱 반을 넘긴 8회, 바깥세상에서 박정우를 옭죄던 차민호(엄기준 분)가 그의 두 발로 감옥행을 택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아버지의 순애보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박정우의 수난사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살인 혐의는 재심 공판에서 친구 강준혁(오창석 분)이 튼 '자백' 동영상으로 옴짝달싹할 수가 없게 됐다. 결국 상고마저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제 사형수 낙인과도 같은, 붉은 3866번호가 박힌 푸른 죄수복을 받은 처지의 박정우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반 그를 바라보며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덜어졌다.

무엇보다 기억도 잃고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던 박정우가, 조금씩 기억을 찾아가며, 비록 이젠 재심마저 포기한 사형수의 처지지만 그러기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형이 왜 죽어요'라는 의문의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성규(김민석 분). 다시 찾아온 그를 보고 박정우는 자신의 딸 하연이가 생존해 있으며 그가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자백 동영상과 관련된 기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비록 아내는 죽었지만 딸 하연을 살리기 위해 피치 못하게 자백해야만 했던 사실을 박정우가 깨닫게 되며, 그는 여전히 감옥에 갇힌 처지이지만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탈옥'을 감행하려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즉 박정우의 상고 포기는 그를 지켜보는 적들에게 '포기'라는 항복 선언을 통해 그에 대한 안심을 주려는 '페이크'인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자 하는 일타이피의 작전이다. 비록 아내는 지키지 못했지만 딸을 지키기 위한 목숨을 건 곡진한 아버지의 순애보다.

살인자의 일타이피 순애보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그렇게 이제 '박정우'버전 '프리즌 브레이크'가 시작되나 했는데, 박재범 작가는 보기 좋게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며 8회를 마무리한다. 그간 노심초사 죽은 형 코스프레를 하며 차명그룹 장남 행세를 하던 차민호. 하지만 그가 전혀 몰랐던 형의 여자 제니퍼 리(오연아 분)가 등장하자, 결국 예의 '사이코패스'적 행태를 되풀이하고야 만다.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도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던 형의 애인을 흔한 '매수' 대신, 영원히 입을 다물게 만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순간 그가 걱정한 것은 '살인'이 아니었다. 자신의 살인 과정이 중계된 핸드폰을 듣고 있던 형의 아내이자 자신의 첫사랑 나연희(엄현경 분)였다.

살인자의 순애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충격으로 술에 취해 음주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친 아내를 대신하여 자신이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물론 운전대를 잡고 경찰서 취조실에 들어설 때까지 차민호가 감옥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수사를 강준혁이 맡은 것처럼 그는 '법망'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취조실에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그는 '법꾸라지' 대신, 자신의 발로 감옥행을 택한다. 박정우의 아내를 죽였듯 그리고 오연아를 죽였듯, 이제 '도발'을 포기한 박정우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기 위해 감옥행을 택한 사이코패스 재벌이라니! 신선하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8회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박정우와, 그런 박정우를 손아귀에 틀어쥔 차민호에 의해 조종된 조력자들간의 일종의 대리전 양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박정우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온 차민호와 사건의 전말을 자각한 박정우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감옥 속 조우는, 차선호의 죽음을 둘러싸고 차선호인 척 하는 차민호를 쫓는 검사 박정우의 추격전에서, 감옥에 갇힌 박정우와 차민호 조력자의 대리전을 지나, 본 게임의 시작을 알린다.

탈옥의 기회가 되는 이감까지 일주일. 그런 박정우를 죽이려 드는 차민호와의 숨 막히는 대결에서 박정우는 목숨을 보전해야 탈옥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중의 딜레마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이 제법 돌아온 박정우라니 기대해 봄직하다. 덕분에 지난 8회 동안 ‘사이다’ 한 잔을 마다하고 '고구마'를 꾸역꾸역 먹은 애청자들에겐 서광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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