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서 ‘북풍’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북정책에 대한 총체적 비전이 아니라 사드 한반도 배치 단일 사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형식의 문제제기는 결국 ‘색깔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색깔론’의 신호탄은 조선일보가 쏘아 올린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14일 지면에 김대중 씨의 칼럼을 실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취임 이후 다른 국가보다 북한을 먼저 갈 수 있다고 했다는 것에 대한 글이다.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대북관’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진데 대해 문재인 전 대표가 이를 ‘색깔론’으로 해석하며 반격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며 국민은 대통령이 될 사람에 대한 사상검증을 당연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제기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문재인 전 대표 본인이 말하는 대로의 ‘종북’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게 김대중 씨가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

조선일보 14일자 칼럼

문재인 전 대표가 특정 언론과의 인터뷰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미국과 북한을 모두 갈 수 있다면 북한을 먼저 가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보수세력 일각의 문제제기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유아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을 먼저 가면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것이고 북한을 먼저 가면 ‘종북’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유치한 논리다.

북한을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왜 가는지가 중요하다. 문재인 전 대표가 북한을 시급히 방문하겠다는 것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등의 파국으로만 귀결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변화시켜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9일 JTBC <썰전>에 출연해 “미국이든 북한이든 러시아든 국익에 도움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누구든 만나겠다”,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미국과 협의해 북한에 먼저 갈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선일보 김대중 씨는 이 해명에 대해 “거기서 끝났으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주저 없이 ‘북한 먼저 가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빨갱이 운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결국 “못 믿겠다는 것”이다.

레드컴플렉스에 포위된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 ‘공산당’, ‘종북’은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사실상 동의어로 쓰여 왔다. 이런 표현들은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본심을 좋은 말로 숨기며 체제에 은밀히 위협을 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 이 모든 혐의가 증명되는 사례는 실제로 종종 일어난다. 이른바 ‘간첩 사건’이라는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내용을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을 했다거나 NLL을 포기했다거나 하는 문제제기는 정확히 공안당국이 ‘간첩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한다. 그러니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말에 대해 죽자고 달려드는 일부 보수세력에 문재인 전 대표가 진절머리를 내는 것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이 이후 이런 식의 우격다짐식 사상검증이 횡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날 지면에 실은 사설을 보면 그렇다. 북한의 새로운 미사일인 ‘북극성 2형’은 사드로만 요격 가능한데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들은 안이한 입장 표명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는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로 내고 있다. 이날 사설에서 “김정은이 우리 목에 비수를 들이미는 상황에서도 대화와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는 주자들은 그것이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김정은에 굴종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부터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쓴 거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시험은 확실히 문제다. ‘북극성 2형’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탑재된 기술인 ‘콜드 런치’를 통해 발사돼 사전탐지가 어렵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고각으로 발사돼 낙하시 속도가 빠르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책인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는 정보자산을 통한 미사일 발사 사전 탐지와 원점타격을 핵심으로 하는 ‘킬체인’ 및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통한 저고도 요격이 핵심이다. ‘북극성 2형’은 이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여기에 SLBM의 위력까지 더할 경우 우리 군으로서는 사실상 대응방안이 없어진다. 사드는 고고도에서 ‘북극성 2형’을 요격할 수 있을 걸로 기대되나 이것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이 중대한 문제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따져야 할 것은 어떤 경우든 전쟁이 시작되면 아무리 완벽한 대응체계를 갖추어도 피해를 면키 어렵다는 거다.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 외에도 장사정포 등으로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다. 장사정포는 북한이 발포하기 전에 원점타격을 하는 게 아니면 사실상 대응방안이 없다. 특별히 고각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 경우라도 개전 즉시 수도권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니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북정책이 필요한 것이고 이는 군비경쟁 외의 외교적 수단에 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0년의 힘 위원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대화가 성공하려면 북이 군사적 수단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해야 한다”, “김정은이 가진 미사일에 한·미가 완전히 무방비라면 타협할 리가 없다. 협상이 아닌 굴종을 요구하게 돼 있다. 외교는 군사적 대비가 된 뒤에 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는 원론적으로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대북정책을 고민하면서 반드시 보아야 하는 것은 역으로 애초에 북한이 군사적 수단으로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경위가 무엇이었느냐에 관한 것이다.

북한이 군사적 수단에 의한 해결방식만 집착하게 된 것은 결국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파탄적 대북정책으로 일관한 보수정권의 책임이다. 남북문제를 1991년 이전 수준으로 후퇴시킨 이명박 정권의 책임이 크다. 박근혜 정권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의 온건책을 다시 되살린 것은 전임 정권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한 행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상 역시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그 원인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있는지, 아니면 군 출신 인사들의 북한붕괴론에 있는지, 양쪽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인지는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계속하면 할수록 사드 한반도 배치 가능성은 커진다. 사실 지금도 야권의 누가 집권하더라도 사드 한반도 배치 자체를 무효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사드 한반도 배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 전체와 긴밀히 연결돼있는 만큼 외교적으로 유효한 방식으로 다뤄졌어야 했으나 박근혜 정권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를 서둘러 결정했다. 그런데 실제 이유가 뭐든 사드 한반도 배치를 졸속으로 결정하게 된 것의 배경은 대북정책의 실패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사드 한반도 배치문제는 보수정권의 대북정책 전체에 대한 평가와 긴밀히 연결돼있다. 야당 소속 대권주자들의 안보관을 검증하겠다면 이 대목부터 짚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일부 정치세력과 호응해 다짜고짜 사드 배치에 찬성이냐 반대냐를 묻는 것으로 이런 평가를 대체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공안이 ‘간첩’을 대하는 논리는 사드를 배치하자고 하면 또 다른 이유로 ‘종북’ 혐의를 들이미는 것이다. 야권 일반에 계속되는 이런 식의 공세가 오히려 건전한 정책적 검증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조선일보 김대중 씨는 “지금의 시대는 권력 유지를 위해 비판자를 공산주의자로 몰고 매카시적 수법으로 매도하는 것이 용인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반대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바로 그게 매카시즘이 자기를 변호하는 논리였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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