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구도다. 과거와 같으면 이 말은 여당 대 야당으로 형성된 선거 구도를 말하는 것이었겠으나 이번엔 다르다.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양강구도를 형성 중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물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안희정 충남지사와 함께 2위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 수치만 놓고 ‘문재인 대 안희정’의 양강구도라고 말하는 것은 이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규정하는 주변적 맥락을 놓고 보면 이런 표현이 무리가 없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이 여론조사에서 얻고 있는 지지율이 그야말로 ‘절대적’이라는 점을 봐야 한다. 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월 6일부터 10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무선 전화면접(20%), 무선(70%)·유선(10%) 자동응답 혼용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0%p,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공정심의위 홈페이지 참고)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43.8%에 이른다. 반면, 황교안 권한대행의 주요 지지기반으로 추측되는 새누리당은 14.5%였다. 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까지 감안하면 본선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매우 낮다. 더군다나 황교안 권한대행은 아직까지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 여부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태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사람이 대통령직도 거머쥐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중에서는 여전히 문재인 전 대표가 안희정 지사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안희정 지사의 추격세가 심상치 않다. 당내 경선의 특성상 문재인 전 대표가 승리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지만, 이 ‘추격세’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분명하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결국 지금 국면은 ‘문재인 대 안희정’이라는 양강구도로 표현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이는 다른 정치세력들이 두 사람의 차이를 부각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에 돌입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3일 오전 한국기독교협의회를 예방하기 위해 위해 김진표 의원 등과 함께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13일 지면에 정우상 정치부 차장 명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은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가 ‘대연정’을 두고 충돌하는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대청소’ 구상을 밝히며 ‘개혁’에 치우친 행보를 했다면, 안희정 지사는 ‘대연정’으로 ‘통합’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당내 경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도 안희정 지사가 이를 고집하는 것은 결국 ‘소신’이며 이에 대한 찬반이 민주당 경선 결과를 좌우하게 될 거라는 내용이다.

조선일보의 이런 인식은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거의 확실해진 상황에서 ‘민주당 정권이 아니면 좋고, 굳이 민주당 정권이 된다면 문재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판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그간 집요하게 문재인 전 대표를 ‘친노 운동권’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를 해온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조선일보는 이날도 사설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론에 대해 “나는 승복하겠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이 나오면 국민이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걸 두고 “마지못해 한 듯하지만 어쨌든 그의 입에서 '승복'이란 말이 나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했다. 조선일보 지면만 보면 안희정 지사는 한없이 합리적인 사람이고 문재인 전 대표는 검은 속마음을 감추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 문재인 전 대표 또는 안희정 지사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 각각의 정책 집행에 내용상의 차이가 클 것인지는 의문이다. 안희정 지사는 ‘대연정’의 전제로 국가적 개혁의 과제에 합의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 과정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와 상의한다는 점 역시 분명히 하고 있다. ‘국가적 개혁의 과제’라는 것은 문재인 전 대표의 ‘대청소’를 연상케 한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청소’ 역시 실제로 작동되면 ‘당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현재의 원내 의석수 분포로 따졌을 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만 가지고 정권이 원하는 대로 의회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연정이나 협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은 연정 파트너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국민의당, 정의당과 다수파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인데 박근혜 정권에 대한 반대를 고리로 야권이 연합한 현재의 국면이 더불어민주당 집권 이후에도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또 대선 전 개헌을 전제하지 않는 연정 제안은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는 점에서 ‘대연정’은 ‘정계개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두고 “우리 당과 통합될 국민의 당”으로 표현해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발언은 자신이 집권하면 국민의당을 주요한 상대로 해서 정계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암시를 한 것으로도 들린다. 여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계개편은 3당합당, 열린우리당 창당, 한나라당-자유선진당 통합 등에서 보듯 성공확률이 높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의 ‘차이’라는 건 그리 크지 않으며 보수언론이 제기하는 ‘프레임’은 일종의 신기루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12일 오후 광주 북구 풍향동 광주교육대학교 대학원 대강당에서 열린 더좋은민주주의 광주포럼 여성 및 청년위원회 간담회 연단에 올라 기조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의 차이를 부각하려는 시도는 국민의당 역시도 지속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참여정부 시절의 대북송금특검 문제이다. 대북송금특검은 열린우리당 창당 등과 함께 ‘호남홀대론’을 구성하는 핵심 축 중 하나이다. 국민의당이 대북송금특검에 대한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의 입장을 문제 삼는 것은 최근 호남 지역 여론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의도 인사들은 호남 민심에 대해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할 수 있지만 문재인 전 대표의 대안을 찾고 싶은 것도 사실’이라는 정도로 요악하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안희정 지사가 대북송금특검에 대해 “다수인 한나라당이 요구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가 사과한 걸 두고 “역시 안희정”이라며 “이렇게 정치를 해야 감동을 먹는다. 화이팅! 안희정 지사”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거듭 밝히지만 안 지사는 그 내용과 진행 등에 전혀 관계치 않았다”고 했는데, 결국 청와대에 있었던 문재인 전 대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그런데 안희정 지사는 정확히 “저의 위로와 사과가 그 당시 고초를 겪은 분께 위로가 되면 얼마든지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했을 뿐 당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바꿨다고 말한 바는 없다. “14년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선을 다해 결론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6·15에 이어 10·4 남북공동선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한걸음 전진시켰다”고 했을 뿐이다. 이 대목은 문재인 전 대표가 당시 대북송금특검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하고 있는 것과 큰 차이로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정치공학의 관점으로 본다면 박지원 대표의 이런 행보는 안희정 지사를 띄워 문재인 전 대표를 깎아내리는데 이용하겠다는 걸로 보인다. 이의 결론은 호남 지역에서 국민의당이 포함된 3당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의 차이가 부각되면 부각될수록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의 확장력만 늘어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둘 사이가 멀어질수록 안희정 지사의 중도 확장력은 증가한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승리는 여전히 확정적이다. 만일 문재인 전 대표가 승리한 이후 안희정 지사에게 중책을 맡기겠다거나 혹은 그의 아젠다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안희정 지사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40%를 상회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이런 가능성을 계속 가리키고 있다. 보수세력 일각과 국민의당이 이런 공학적 프레임 싸움에 집중할 때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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