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속에는 고양이, 야옹야옹' 그것으로 족했다. 박정우(지성 분)가 기억을 헤집어 어렵사리 찾아낸 메모리칩에도 불구하고, 강준혁(오창석 분)이 내놓은 박정우의 자백 동영상으로 '사형' 판결을 뒤엎을 수 없었던 <피고인>. 6회를 달려오며 되풀이된 박정우의 수난사는 이번 회차에도 어김없었다.

결국 그 동영상으로 자신이 아내를 죽였음을 받아들인 박정우. 그가 숨겨온 검은 비닐봉지로 교도소 방 철창에 올가미를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목을 넣으려 발돋움할 때, 들려온 성규(김민석 분)의 나지막한 목소리. '형이 왜 죽어요? 형이 한 것도 아닌데, 내가 한 건데' 그리고 이어진 정우만이 아는, 고양이를 사달라고 조르던 딸 하연이의 노래. 죽음으로 몰린 정우에게 비친 서광이요, 도돌이표 같은 정우의 수난사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주어진 일주일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토네이도처럼 확장돼 가는 사건,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첫 회 거대 로펌의 회유에도 의연했던, 재벌가를 향해 저돌적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로서의 활약이 무색하게, 사형 확정 판결을 기다리는 박정우의 수난은 끝이 없다. 제 아무리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주장해보아도, 마치 리셋되는 '루프'처럼 하은의 생일날로 되돌아가버리고 마는 그의 기억은, 설상가상으로 검사 박정우에게 또 다른 ‘함정’이다. 스스로도 확신할 수조차 없는 지워진 기억, 그를 옭죄어 오는 악재의 연속. <피고인>은 재심을 앞둔 기억상실증 검사 박정우의 수난사로 방영 시간의 많은 부분을 채워간다.

이른바 애시청자들 사이에서 '고구마'로 지칭되는 이런 주인공의 수난사. 그러면 채널이 돌아갈 만도 하건만, 1회 14.5%를 시작으로 5회 18.6%(닐슨 코리아)까지 꾸준한 상승세다. 김상중의 명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2위 <역적>과의 격차도 생각보다 크다 (5회 10.5% 닐슨 코리아), 과연 사이다도 없이 꾸역꾸역 '고구마'만 먹는데도 시청자들의 증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피고인> 방영 시간의 대부분은 박정우의 수난사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저 수난만은 아니다. 1회였다면 아내를 죽인 혐의에 주기적 기억 상실을 겪는 박정우와 그런 그와 대립각에 놓인, 형까지 죽인 사이코패스 재벌 차민호(엄기준 분)에 대한 소개. 2회는 그런 수난사에 이어 마지막 10분 캐리어를 차에 실은 범인의 얼굴, 즉 박정우를 드러내며 시청자를 그에 대한 의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분명 정의로운 검사였는데, 캐리어를 싣고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드러낸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니. 보는 사람조차도 그에 대한 의심을 무럭무럭 키워가는 과정에, 4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용의자로 강준혁을 등장시킨다. 박정우와 함께 그의 아내 윤지수(손여은 분)를 짝사랑했던 강준혁, 이제까지 우군인 듯했던 그의 등장으로 여전한 박정우의 수난사에 대한 각도가 달라진다.

이렇듯 드라마는 박정우의 수난사를 줄기로 도돌이표를 그리는 듯하지만, 그 도돌이표는 새로운 용의자를 등장시키며 점차 확장되며 사건의 본질을 향해 간다. 마치 토네이도처럼. 이제 조금씩 커져가는 사건의 동심원은 6회 드디어 성규가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데 이르며, 두텁게 드리웠던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이렇게 드라마는 '고구마'인 듯하지만, 느린 듯 차곡차곡 그날의 진실을 향해 간다. 물론, 그 날의 진실 저편에 차민호라는 살인마가 존재함은 '노골적인 스포'다. 하지만 그의 위력은 압도적이고, 그에 반해 박정우는 너무도 미약하다. 심지어, 초반 가장 친한 벗이던 강준혁이 알고 보니 그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인물이었고, 이제 6회 마지막 그에게 가장 친절했던 감방 동기가 자신이 진범이라 한다. 이렇듯 진실에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박정우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그의 조력자들은 차민호에 의해 죽어간다. 이 아득한 상황 속에서도 '진실'의 빛은 그럼에도 <피고인>을 다시 봐야할 가장 큰 '유인'이 된다.

가족으로 얽히고설킨 인간 군상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그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인 장르물과 달리, <피고인>은 이젠 ‘SBS 장르물’이라고도 명명할만한 특징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바로 '가족'이란 주제이다.

<피고인>은 강직한 검사 박정우와 사이코패스 재벌 차민호의 대립 구도를 가져가지만, 그 구도를 재벌가의 비리 척결이란 일반적 구조 대신, 정의의 역할을 맡은 박정우를 '살인범'으로 몰아 감옥에 가두는 극단적 장치를 등장시킨다. 생소한 장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던 <프리즌 브레이크>를 통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이 장치는 신선한 서사로 시청자를 솔깃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솔깃한 장치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건, 바로 '아내를 죽이고 아이를 유기했다는' 극단의 범죄이다. 다른 것도 아닌 가장 정의로웠던 검사가 가장 파렴치한으로 둔갑한 이 사정은 '가족'이란 문제에 예민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더할 나위없는 요소이다. 하지만 '가족'의 관련은 박정우만이 아니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형을 죽인 차민호.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내에서 그의 처지는 분명 그가 나쁜 놈임에도 '측은지심'까지 끌어 오르게 만들 정도로 안쓰럽다. 이렇게 가족은 <피고인>의 곳곳에서 '사연'을 피어오르게 만든다. 자신의 딸을 죽였다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매달 박정우에게 10만 원을 차입금으로 넣는 장모와, 조카를 찾아 교도관도 마다하지 않는 윤태수(강성민 분)의 애증의 관계도 '가족'이다. 강준혁의 모호했던, 하지만 알고 보니 배신인 처신의 이면에 드러난 또 다른 애증의 가족 관계나, 몰래 찾아보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지닌 국선 변호사 서은혜의 가족도 빠져서는 섭섭한 '혈연의 늪’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재벌가의 도덕적 아노미라는 씨실에, 가족으로 얽히고설킨 범죄 사건을 날실로 엮어 가며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장르물을 만들어 간다. 박정우의 사랑과 부정이, 차민호와 강준혁의 애증이, 그리고 서은혜의 트라우마가 <피고인>의 숨겨진 흡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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