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단체는 지난 9월 9일 KBS에 제20기 시청자위원회 명단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서를 냈다. KBS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지난 9월 1일 이미 임기가 시작된 시청자위원회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공개 청구를 하기 전 KBS시청자위원회에 두 번의 전화를 걸었다. 공개가 미뤄지는 정확한 이유를 듣기 위해서였다.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는 담당자가 휴가라서 답변을 할 수 없다고 했다. “KBS에서 답변을 해줄 수 있는 분이 그 분밖에 없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 서울 여의도 KBS 본사 사옥 ⓒ미디어스
그래서 할 수 없이 주말을 기다려 월요일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와 연결이 됐다. 공개가 미뤄지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KBS안팎으로 일이 많아 늦어지게 되었다, 위촉식을 못해 위촉식을 하면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납득할 수 없었다. 일이 많아 늦어졌다는 핑계도 말이 안 되지만, 설사 일정이 바빠 위촉식을 열지 못했다 해도 이미 선정된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방향을 달리해 다시 물었다. 그럼, 언제 공개할 예정인지, 구체적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조만간’, ‘9월 중으로’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이에 시청자를 대표해 일하는 시청자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시청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항의하고 전화를 끊었다. 담당자도 곤혹스러워 하는 눈치다. 담당자 탓이 아니니 추궁하는 사람도 마음이 불편하다.

다음 날 정보공개 청구를 내고 난 후 몇몇 매체의 취재가 있었고, 기사를 통해 KBS의 입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시청자위원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도, ‘일이 많아서, 일이 밀려서 그랬다’는 말도 어제 들은 그대로다. 제법 그럴 듯한 해명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계속 말도 안 되는 얘기뿐이다. 어제만 해도 구체적 일정이 없다더니, 그새 ‘17일’에 발표한다고 일정까지 잡아놓았다. 이러고도 별 문제 없다는 식이다. 참으로 뻔뻔하다.

17일 발표된 명단은 예상대로였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보수인사가 다수 포진했고, 방송과 직접 관련이 없는 생소한 인사들이 명단을 채웠다. 요약하자면 ‘보수주도, 무색무취’다. 현 정권의 방송장악과 이병순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고른 결과이다.

정권과 코드를 맞춘 보수인사들이 주도하는 시청자위원회는 향후 수신료 인상 국면이나 이병순 사장 연임 정국에서 들러리가 될 공산이 크다. 또한 현 정권의 방송장악과 KBS프로그램의 관영화를 옹호하고, 합리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이병순 사장과 KBS는 공적 기구인 시청자위원회마저 사익실현과 정권옹호를 위한 정략적 도구로 전락시켰다.

이번 20기 시청자위원회가 얼마나 사회적 대표성을 갖는지도 의문이다. 18일 KBS가 보내온 정보공개 결과 통지서를 보면, ‘언론관련 시민, 학술’ 추천부분 위원은 총 3명인데 그 중 2명이 KBS출신이다. 그나마 1명은 KBS사우회가 추천했고, 현직 이력도 ‘사우회 회원’으로 적혀있다. 시청자를 대표해 KBS를 감시, 견제해야 할 시청자위원에 KBS사우회원이라니, 자격이나 된단 말인가. 이 밖에도 16년째 백제부흥운동에만 몰두해왔다는 고고학자가 ‘경제문화분야’ 시청자위원에 위촉되었는가 하면, 한국건설문화원 이사장이 ‘과학기술분야’를 대표해 선정되기도 했다. 최소한의 구색 갖추기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KBS시청자위원회는 어느 하나 상식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명단 비공개의 이유를 묻는 시민사회와 언론의 정당한 질문에 답변을 회피한 채 끝내 어떤 사과나 해명도 하지 않은 KBS의 오만한 태도는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최소한의 절차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재 KBS가 전력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수신료 인상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기본적인 절차도 지키지 않은 채 무조건 올리겠다고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인다간 민심의 역풍만 맞게 될 게 뻔하다. 이병순 씨는 KBS에 대한 신뢰도가 왜 불과 1년 만에 밑바닥을 쳤는지 기본부터 천천히 곱씹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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