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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팬덤 문화를 위하여[기고]'동방신기'와 '2PM' 사태가 남긴 것들
권경우/문화평론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 | 승인 2009.09.17 15:24

지난 주말(13일) 강남구 청담동 JYP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2천여 명의 2PM 팬들이 침묵시위를 했다. 그들은 2PM의 리더 ‘재범’을 둘러싼 사태에 대한 소속사 책임을 묻고 있었다. 분명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소속사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 게 사실이다. 소속사측이 사태가 발생한 초기에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그 후 재범의 탈퇴와 관련돼 있다. '재범'의 결정에 대해 소속사에서는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결국 상호 합의하에 결정됐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그렇다면 소속사는 진위 여부 혹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사태의 발단이 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대중들의 부정적 여론에 대해 굴복 혹은 타협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팬들이 분노하고 일어난 것도 바로 그러한 소속사의 불분명한 태도와 사태 진화 과정에 대한 항의의 표시인 셈이다.

   
  ▲ JYP 사무실 앞ⓒ오마이뉴스 양창모  
 
위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2009년 한국사회에서 ‘팬덤’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동방신기’ 사태와 ‘2PM’의 리더 재범의 탈퇴에 이은 팬클럽의 대응은 팬덤 문화가 과거와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두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 외에는 사실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팬들의 움직임을 놓고 볼 때 ‘새로운 시대의 팬덤 문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는 그 동안 한국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계에 내재되어 있던 대형 기획사와 팬클럽의 충돌 양상이 표면화된 것이며, 나아가 앞으로 팬덤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동시에 스타 연예인의 존재 방식과 대형 기획사, 그리고 팬덤 문화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의 문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원숭이가 아닙니다.” 이 말은 지난 9월 10일 동방신기 팬들이 <한겨레신문> 1면 광고에 실은 문구다. 광고 윗부분에는 눈과 입, 귀가 가려진 원숭이를 각각 그려놓고 ‘알려고 들지 말라’ ‘주장하지 말라’ ‘답을 기대하지 말라’는 문구로 동방신기의 현주소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지난 달 20일에도 무료신문과 일간지에 ‘당신의 근무 환경은?’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해 ‘장기 계약’의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이번 광고 역시 동방신기 팬클럽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이뤄졌다고 한다. 또한, 광고 하단에는 “동방신기는 인격권과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적었다.

스타‧ 기획사‧팬클럽, 꼭지점을 이루며 상호 진화해야

이와 관련해서 팬클럽은 국가인권위원회에 탄원서를 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서를 제출하는 등 과거 팬클럽이 했던 행동 혹은 활동의 방식, 범위, 태도 등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연예인과 팬클럽의 관계가 단순히 연예인을 추종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존중의 관계로, 더불어 연예인이 나이나 성별, 혹은 국적 등 다양한 영역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하는 인권 등의 문제를 팬들이 챙겨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어린 나이에 연습생 신분으로 기획사와 계약을 맺기 때문에, 몇 년 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고려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미세한 부분에서 불공정한 계약의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대 한국 최고의 아이돌 ‘동방신기’를 둘러싼 소속사와 가수들의 갈등 사태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대형기획사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 사건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제 기획사와 연예인의 계약 관행에 있어서 변화는 불가피하게 됐고 연예인의 존재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팬클럽의 존재 방식에 있어서도 진화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특히 재범의 탈퇴와 미국행은 어쩌면 팬클럽과 대형기획사의 힘겨루기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기획사는 재능 있는 가수를 발굴해서 수 년 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상당한 권리를 주장한다. 기획사는 그것을 ‘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투자’에 대해서 팬들은 관심이 없다. 팬들, 혹은 대중은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대중문화 시장에서 그들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타 연예인의 존재는 단순히 대형 기획사의 자본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가시적인 혹은 비가시적인 영향력이 미칠 것이다. 결국 스타와 기획사, 그리고 팬클럽은 세 개의 꼭지점을 이루면서 공진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한때 기획사에서 팬클럽까지도 관리하려고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팬들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들은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과 정체성으로 무장을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활동이 아니라 팬클럽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적극적인 생산자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 팬들이 붙인 포스트잇ⓒ오마이뉴스 양창모  
 

대형 기획사의 변신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한국 대중문화계는 팬덤의 새로운 진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획사는 훌륭한 가수를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자신들이 발굴하고 키웠다고 해서 그에 대한 ‘종신의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수는 단지 ‘원숭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과 가수로서의 생활,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발언하는 주체로서 성장해야 할 것이다. 기획사에서 만들어준 ‘정답’만 반복하는 앵무새가 되어서는 자기 스스로 늪에 빠져드는 게 된다. 아울러 팬클럽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 단순히 ‘○○빠’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오빠들’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서로 인정하고 비판할 수 있는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형 기획사의 변신 노력이다. 우선 연예인에 대한 소유 개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이 대중문화를 통해 드러나는 공적인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획사가 할 일은 연애 등 그들의 사생활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기획사에서 그들이 오랜 세월 연예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다양한 현실에 대해 폭넓게 경험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통합적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음으로 기획사들은 새롭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팬덤 문화의 현실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팬덤은 단순한 수용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스타와 함께 더불어 성장해가는 공생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에 대해 과거와 같은 일방적이고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좀 더 쌍방향적이고 상호 존중의 관계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팬덤 문화가 단순히 스타와 팬의 관계를 넘어 동시대 한국사회의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권경우/문화평론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  noma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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