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이다. 이영애의 10여년만의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가 된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가 4회 만에 KBS2의 <김과장>에 역전되었다(닐슨코리아 기준, <사임당>12.3%, <김과장> 13.8%>). 물론 <사임당>이 억울한 면도 있다. 이영애의 복귀작이라지만, 아직 방영 분량의 대부분은 젊은 사임당인 박혜수가 타이틀롤 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극에 애절한 운명을 버무린 '사랑' 이야기 대신, <김과장>이란 이 소박한 타이틀의 드라마에 쏠리는 관심이라니, <사임당>을 변명해 볼수록 <김과장>이 어떤 드라마인가가 더 궁금해진다.

남궁민에게 인생 캐릭터를 선물한 박재범 작가

KBS 2TV 수목드라마 <김과장>

타이틀롤이 김과장인 만큼, 주인공 김과장 역을 맡은 남궁민을 빼놓고 이야기를 풀어갈 수 없다. 남궁민은 일찍부터 연기 잘하는 배우였다. 2011년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장준하-봉마루로 분해 악과 선의 경계에서 흔들렸던 캐릭터로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그의 존재감도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그러던 그가 <우리 결혼했어요>란 예능을 시작으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악역으로 변신하더니 <리멤버-아들의 전쟁>, <미녀 공심이>까지 그 연기의 폭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이제 <김과장>을 통해, 그렇게 물오른 남궁민 표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방영 전부터 <직장의 신(2013)> 속 미스 김을 떠올리게 했던 작명 김과장으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남궁민의 김과장. 지방 덕포 흥업에서 그의 천재적 능력을 '즐기며' 소소하게 장부 조작이나 하며 덴마크 이민을 꿈꾸던 그가 그 꿈을 앞당기기 위해 던진 로또 TQ그룹 경리 과장. 아니나 다를까, 미스 김처럼 '사이다'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의 현실적 속물주의가 어쩐지 끌리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김과장>을 이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다 해도 그 연기를 담을 그릇이 마땅치 않다면, 연기가 충분히 빛나기는 힘들 것이다. <김과장>에서 배우 남궁민이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이 뛰어놀 수 있는 풀을 만들어 준 이는, 다름 아닌 OCN 장르물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신의 퀴즈> 네 시즌을 집필했던 박재범 작가이다. 팬들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시즌 4를 끝으로 더 이상 <신의 퀴즈>를 집필하지 않았던 박재범 작가는 이후 KBS2 <블러드>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고자 했지만 아쉬움에 그쳤다. 하지만 박재범 작가는 이전에 그가 했던 장르와 전혀 다른 ‘오피스물’ <김과장>을 통해 와신상담의 대역전극을 펼친다.

다양한 층위의 동상이몽

KBS 2TV 수목드라마 <김과장>

<김과장>의 매력은 이런 박재범 작가의 절치부심이 돋보이는, 겹겹의 층위가 쌓인 구성에 있다. 앞서 말한 선이나 악, 혹은 도덕과 부도덕의 잣대가 모호한 ‘소박한 속물(?)’ 김과장이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그가 이민의 꿈을 펼치기 위해 들어간 TQ그룹이 드라마의 주된 격전장이 된다. 그리고 ‘격전장’이란 말이 가장 적절하게도,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 때문에 ‘동상이몽’을 꿈꾸는 것이 바로 <김과장>이란 드라마가 매회 휘몰아치며 시청자를 사로잡은 진짜 이유다.

지방 소도시에서 장부 조작이나 하던 김과장. 사실 그가 TQ그룹의 경리 과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 경영‘을 외치지만 실상은 ’비리의 온상‘인 TQ그룹의 썩은 조직 때문이다. 현재 그룹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현도(박영규 분)는 가족적이며 인간적인 경영을 외치지만 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업의 부실을 키워가는 주범으로, 창업주이자 장인의 딸인 아내 장유선(이일화 분)과 경영권을 놓고 이해를 달리한다. 여느 부부처럼 어디 갔다 왔느냐 아들 걱정을 하던 이 부부가 돌아서며 표변하는 그 표정과, 뒷조사를 부탁하는 이면의 엇갈림이 <김과장>의 동상이몽, 그 첫 번째 포인트이다.

그렇게 경영을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부. 그 중 현재 실권을 쥐고 있는 박현도의 수하에는 기존 그의 오른팔이었던 상무이사 조현영(서정연 분)과, 새로이 스카우트된 서울지법 회계 검사 출신의 재무이사 서율(준호 분)의, 박힌 돌과 굴러온 돌 버전의 동상이몽이 그 두 번째 포인트가 된다.

KBS 2TV 수목드라마 <김과장>

소박한 이민의 꿈을 꾸고 ‘로또’라 생각해서 들어갔던 TQ그룹에서, 생각지도 못한 분식회계 조작팀의 하수인으로 기용된 김과장의 운명과 그 운명을 틀어쥔 서율. 애초 타이타닉 호에 타지 않은 가장 운 좋은 이의 방식을 도모하는 김과장의 해고 작전. 그리고 그런 그를 의혹과 혼돈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대리 윤하경(남상미 분)의 ‘헤치고 모여’ 식의 이합집산이 <김과장>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자기 앞의 이해관계에 연연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이기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현실감, 그런 그들이 진짜 사회 구조적 비리와 악을 마주쳤을 때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는 <김과장>. ‘재벌가의 분식회계’가 익숙한 세상이 드라마의 공감을 도모해주는 서글픈 현실, 그것이 이 드라마의 ‘역설적’ 흥행 코드이다. 직장 생활 좀 해봤던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다양한 ‘부정’들, 그리고 사회 전반이 탄식해 마지않는 가진 자의 '부도덕'을 <김과장>은 TQ그룹 내 인간 군상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간다.

특히나 <직장의 신> 이래 멈칫했던 오피스 사회물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가 반갑다. 마치 '만인 대 만인'의 전장 같은 TQ그룹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미덕'을 찾아가는 김과장 및 동료들의 여정을 지켜보는 건, 마치 복마전 같은 세상에서 ‘희망'을 구도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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