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를 전직하던 시기였던 98년에 출판사에 응시한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유명한 경제경영서 전문 출판사였는데, 그때는 제법 잘 나가던 회사였다. 면접을 보던 날 담당자는 나에게 초고지를 보여주고 나에게 교정을 지시했다. 고친다고 했지만 제대로 고쳤을 리 만무했다. 결국 쓴잔을 맛보았다.(사실 그 후 그 출판사는 그다지 잘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여가 지난 시점에 나는 10여권의 책을 출간했다. 성적을 보면 3권 정도는 아웃됐고, 2권은 포볼, 2권은 안타, 3권은 2루타쯤 된 것 같다. 물론 내 스스로에게 후하게 준 점수일 뿐 출판사가 7권 정도가 아웃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지금 나는 한권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처음으로 제법 성의 있는 원고를 보냈다고 하지만 이번 책을 출판하는 분도 만만치 않은 욕심이 있는 분이라 여전한 불만을 사고 있다. 책이 언제 나올까하는 기대는 접고 기다릴 생각이다.

▲ 도서 '편집자란 무엇인가' 표지
이런 것을 보면 나는 말로만 내 책을 만들기 위해 쓰러진 나무들에게 미안하다고 할 뿐 전혀 예의가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여전히 허접한 글쓰기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부끄럽게도 하고, 즐겁게도 하는 한 권의 책이 소개한다. 김학원의 ‘편집자란 무엇인가’(휴머니스트 간)다.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정말 책이 만들어지는 소중한 정보를 잘 담고 있다. 김학원은 386세대의 주춧돌을 놓은 62년생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출판 운동을 이끌어오면서 ‘오마이뉴스’의 이사를 하는 등 그를 키워준 시대에 예의를 지키고 있는 출판 지식인이다. 사실 출판계에는 지식인의 범주에도 끼지 못하고 ‘출판꾼’을 지향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한 무리로 싸잡아 폄하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저자 김학원은 괜찮은 출판 기획자이자 출판사의 경영자다. 우수한 단행본도 많지만 기획물에서도 좋은 성과를 낸 것을 보면 그가 괜찮은 출판사 경영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출판 편집자만 보기에는 아깝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편집자뿐만 아니라 콘텐츠 영역에 있는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 대학 시절에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고 감화 받았는데, 이 책도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저작이다.

나에게 이 책이 가장 크게 준 요소는 출판의 진행과정에서 기획의 소중함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우직하게(?) 원고를 완성하고 출판사에 준 후 편집과 교정을 거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방식보다는 저자가 말하듯이 “집필 단계를 나누어 매 단계마다 가장 완벽하고 뛰어나게 작업하는”(29페이지) 방식을 택할 생각이다. 또 “저자에게 ..칭찬과 아부만 늘어놓는 편집자(보다)는 당장은 효과가 있을 모르지만, 전문적인 안목과 역량이 떨어지는 편집자는 지속적인 신뢰를 쌓기 힘들다”(42페이지)는 지적에 많이 공감됐다.

또 편집자가 원고를 검토할 때 주목해야 할 네 가지(74페이지) 등도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 필요한 글이다. 또 출판 제안서 쓰기(138페이지)나 제목 찾기(182페이지)도 물론이다. 또 출판업에 종사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365페이지)나 ‘이런 저자를 만나고 싶다’(367페이지)도 되새겨야할 부분이다.

어떻든 좋은 책을 만드는 편집자답게 이 한권의 책도 완결성 있게 만들어 냈다. 사실 나도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책을 보는 습관과 기획하는 능력이다. 독서는 지식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게 해주고, 기획은 지식을 토대로 자신만의 기초를 닦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함량미달의 책을 연거푸 내는 나를 부끄럽게 하면서도 내가 부족한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한번 더듬어 보게 했다는 점에서 나를 정말 즐겁게 한 책이다. 대학 1학년들에게 필독서로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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