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말대로였다. ‘반반’이라 하더니 반기문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안철수 지지자들 쪽에선 야단법석 감이다. ‘정치인’ 안철수의 감각이 지난해 4월 총선에 이어 여전함을 보여주는 증좌로 받아들일 만하다. ‘반반’이라는 카드로 으르면서 ‘UN 사무총장까지 지낸 국가의 소중한 자산으로서 국제외교 무대에서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다’(1월26일 YTN 인터뷰)고 달래는 안철수의 플레이가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반이 사라진 지금, 안의 지지율은 어떻게 될까? 혹시 황교안으로 가는 건 아닐까? 반이 불출마를 선언한 배경은 이미 뒷전이다. 안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올라설지, 황교안 지지율 상승세가 탄력을 받을지에 쏠리는 관심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게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대선은 문재인과 자신의 대결’이라는 안철수의 배짱 프레임이 맞아 들어갈지, 아닐지에 대한 ‘호기심’은 그의 지지율 변동과 직결된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이재명에 치이고 반기문에 눈을 돌리는 사이에 하락했던 안의 지지율이 다시 유턴할 가능성이나, 황교안이 범보수세력의 아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흥미로운 사안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연합뉴스)

일단 안의 지지율은 바닥을 친 듯하다. 각종 여론조사에 황교안과 안희정이 치고 올라가면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도는 순위에서 이재명만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밀리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순위에서 밀리면서도,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다자 대결 구도에서는 5%대까지 추락했던 지지율이 7%대로, 3자 대결에선 10% 초반대에서 10% 중반대로 올라섰다.

누가 반기문을 지지했는지를 살펴보면, 바닥을 친 안의 지지율 향배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반기문은 문재인-안철수와의 3자 대결 구도에서 스스로의 이념 성향을 보수라고 응답하는 층의 36% 지지를 얻었다(한국갤럽 1월10~12일 조사). 보수층의 황교안에 대한 지지는 14%였다. 문재인은 10%,, 안철수 5%, 안희정 5%였고 유승민이 그 뒤를 이었다.

분석을 해보면, 황교안을 지지하는 보수층의 14%는 수구 세력이라 봐도 무리가 아니다. 나머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적어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양심적 보수 또는 합리적 보수 내지 온건 보수라고 분석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층의 상당 부분이 반기문을 지지해 왔고, 일부는 야권 후보 지지로 분산돼 있었던 셈이다. 반기문에 대한 실망 속에서 황교안의 지지율 상승은 이들 양심적 보수의 일부가 다시 수구세력 쪽으로 견인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결국 반기문 퇴장 이후 안철수 지지율 변동은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양심적 보수가 황교안으로 견인될 것이냐, 아니면 안철수를 비롯해 안희정 등 야권 쪽으로 견인될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촛불시위의 여파가 조금씩 잦아드는 배경을 감안하면, 반기문이 마지막 순간까지 얻었던 15~16%의 지지율은 황교안, 안철수, 안희정 등에게 골고루 안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기문이 얻었던 중도층의 지지율이 어디로 갈지도 관심거리다. 반기문은 중도 성향 유권자층에서 문재인(48%)에 뒤이은 25%의 지지를 얻었다. 안철수는 17%였다. 중도층의 문재인에 대한 지지도가 반기문이나 안철수보다 높은 이유는 역시 대세론에서 찾을 수 있다. 문재인이 중도라서 중도층의 지지가 높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부동층 비율이 매우 높았던 가정주부층에서 문재인 지지율이 상당 폭 상승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기문을 지지하던 중도층은 문재인 대세론이 외연 확장을 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대상이다. 이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문재인 대세론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에 이르는 무당파(지지정당 없음 또는 의견유보)는 안철수나 황교안 지지율의 향배를 가르는 의미 있는 변수는 아니다. 무당파 비율은 높지만, 지지후보가 없다는 부동층 비율은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10%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양심적 보수와 중도가 황교안으로 쏠릴 가능성은 낮다. 반면, 이들이 안철수와 안희정에게 쏠릴 가능성은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수구세력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헌재의 탄핵 심의를 조롱하고 있다. ‘정권교체는 기정사실’이며 ‘어떤 정권교체냐, 나냐 문재인이냐가 문제다’는 안철수의 배짱 프레임은 양심적 보수와 중도 속에서 ‘안 부끄러워해도 되는 것 아니야?’라는 흐름이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운명도 여기에 달려 있다. 세습 전제군주처럼 공화제를 유린하고 최순실이라는 사인과 함께 통치 행위를 한 국정농단 사태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보수층이 점점 더 늘어난다면, 이 나라는 청년들의 말대로 헬조선, 글러먹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바른정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안철수의 생각은 황교안에게는 더욱 더 적확한 말이다. 황을 공격하면 보수를 결집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정치공학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안철수답지 않은 게 될 거다. 이래저래 안철수의 행보가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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