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누가, 왜, 라디오를 듣는지……. 청취자들은 라디오를 상상하면서 듣겠지만 나 역시 라디오를 듣는 애청자들을 상상하곤 했다. 청취자들 가운데도 각별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휴대전화 끝자리 6100을 쓰는 애청자도 관심이 가는 분이었다. 방송하다보면 ‘6100님’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전화 끝 번호에 ‘님’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은 문법적으로 옳지 않다. 하지만 방송에서 실명을 부르는 경우가 흔치않아 ‘6100을 쓰는 애청자’ 정도의 의미로 ‘0000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내버스 운전기사인 이분은 문자 참여할 때 표현이 정교해서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거니 생각되었다. 우선 날씨나 기분에 따라 80자로 압축해내는 표현이 섬세하고 명확하다. 그리고 신청곡이 다양한 걸로 미루어 음악적 지식도 풍부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래서 누군가 좋은 경험을 했으면 칭찬을, 슬픈 일을 당했으면 위로의 반응을 보낸다. 삶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일 것이라고 파악된다. 또한 라디오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서 간혹 버스안 풍경을 ‘눈에 그리듯’ 설명해준다. 한마디로 ‘정이 많고 명석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방송의 진행자가 바뀔 때마다 ‘너무 슬퍼서’ 차를 세워두고 울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나 역시 ‘그토록 너무 슬픈’ 이유가 궁금하기도 해서 어느 날은 직접 찾아가보리라 마음먹었다. 6100도 흔쾌히 수락해서 버스 운행구간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동행 취재하기로 했다.

자동차도 사람도 지나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에서 10여분 정도 기다렸다. 너무 적막해서 ‘이런 곳에 승객이 있기나 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잠시 후 놀랍게도 알려준 도착시간에 딱 맞춰서 6100이 운행하는 버스가 도착했다.

▲ 인적조차 없는 한적한 시골ⓒ김사은PD

▲ 드디어 시내버스가 도착했다ⓒ김사은PD

인사를 건네자 마자 “제가 잔 정이 많아서요, 방송이든 사람이든 한번 정주면 쭉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거든요. 그래서 방송에 정을 안주려 했는데” 라며 말문을 연다. 하루 종일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방송피디 못지않게 다음 코너는 무엇이며 이런 이야기 다음으로 어떤 노래가 나올거라는 둥 구성요소를 파악하고 있는 듯, 6100은 준비한 멘트를 척척 풀어놓는다.

6년 전, IMF여파로 4억여원의 빚을 지고 시내버스 기사로 취업했다는 그는 열심히 일해서 지난해 빚을 청산했다고 한다. 말이 4억이지 그 이자며 빚잔치를 하자면 6년동안 버스기사로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일을 했을지 짐작된다. 운행 틈틈이 사람들이 올라타기 시작했다. “어서오세요” “쨍~” 경쾌한 돈소리, 승객들이 들어서면서 그의 말투도 흥이 묻어난다.

“할매들이 타야 재밌는디……. 장바닥같아요. 왁자지껄 사는 얘기 들으면 정말 재밌어요. 아이구~ 서로 돈 낸다고 싸우다가 넘어지는 일도 있구요, 이 차는 에어컨이 없잖아요. 더운 여름에는 구간구간 햇볕 피해서 이쪽으로 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그러면서 또 넘어지면 간 떨어지지요. 시내버스는 안전벨트가 없잖아요. 게다가 노인들은 뼈도 약해가지고, 아휴~ 그런 걱정이 젤 스트레스예요.”

낙천적인 6100이 이정도 얘기를 하는걸 보니 어르신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 하다. 아닌게 아니라 서로 밀치다가 골절상이라도 입으면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운전을 하면서 그다음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시간을 맞추다가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다보니 위장병이 다반사라는 것. 6100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고 뿌듯해한다.

운전 중 문자행위는 매우 위험한 일, 동승취재하다보니 운전하면서 문자 보낼 시간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많은 문자는 언제 보낼까? “아, 그건 다 노하우가 있어요. 구간 구간 운행하다보면 조금씩 시간을 조절해야 하거든요. 출발 시간 기다리면서 문자를 써서 저장해 두었다가 보내는거죠” 씩 웃으며 한수 전해준다. 안전운행이 우선인데 이런 정도 실천한다면 나 또한 안심이다.

▲ 애청자 6100 김용문씨. 이 좁은 공간과 라디오가 그의 일터이자 희망의 공간이다ⓒ김사은PD
버스는 김제시장을 거쳐 다시 용지로 출발한다. 승객들이 의자에 앉을 정도로 꽉 찼다. 장바구니에 희망이 가득하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피디님도 방송일에 자부심을 갖죠? 저도 제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내 일에 만족을 해야 해죠. 제 생활이 순탄치는 못했지만 앞으로는 탄탄대로라고 자신하거든요.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자기일에 충실하면서 만족하면 그걸로 행복한 거예요. 전 제 일이 좋아요”

이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원천은 뭘까?

“라디오 덕분이죠. 집에 가면 와이프가 있고 이곳에선 라디오가 친구예요. 유일한 낙”

사진을 한 장 찍겠다고 하자 ‘친구들이 깍두기같다고 놀린다’면서 쑥스러워하던 6100, 마지막으로 뼈대있는 말 한마디 남긴다.

“서민들 가려운데 속이라도 시원하게 긁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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