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4일)은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사장이 선임되는 날입니다.

정부는 그 동안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그야말로 가지가지 추태를 벌여왔습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야당과 시민사회의 적극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측근 중 측근이라고 하는 최시중씨를 앉히는가 하면, 먼지털기식 검증에도 아무런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하자, 억지 순환논리로 신태섭 한국방송 이사를 해임하고 감사원까지 동원한 끝에 업무상 배임혐의로 임기가 1년 이상 남아있는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법원에 의하여 불법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난 10일 방송통신위원회는 E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면접과정을 생중계로 기자들에게 공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드러난 상당 후보자들의 EBS에 대한 가치인식수준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학교교육을 보완하고, 국민의 평생교육과 민주적 교육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한국교육방송법 제1조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아니 교육방송을 한 번이라도 시청해 본 적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EBS 교양 문화 관련 프로그램ⓒEBS

그 좋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라든가 교양 문화 음악프로그램 등을 없애거나 줄이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국제중이나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고급 프로그램과 대상별 실용 영어교육 콘텐츠를 확충하겠다는 말까지 떳떳이 해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방송통신위원장이 EBS를 KBS그룹으로 묶어내겠다는 발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EBS의 독립성에 대한 주장을 펴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30년 가까운 노력 끝에 교육부의 지배체제에서 간신히 벗어나 얻어낸 ‘한국교육방송공사’의 가치는 전혀 안중에 없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후보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해도 갑니다. 임명권을 가진 위원회의 의도에 맞추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데에 초점을 모으지 않으면 선발될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EBS가 사교육 경감을 위해 봉사해야한다는 것은 결국 공영방송이 사교육인 ‘메가스터디’랑 싸우라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진정 그것이 맞겠습니까? 우리나라의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마땅합니다.

이 땅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봅니다. 과연 EBS가 그 목적을 사교육비 절감에 두고 나아갈 때 우리의 교육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실제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EBS 수능방송․인터넷강의 자문위원회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된 문제입니다만, 수능방송의 질을 떠나 우리 교육현장의 특성 때문에 사교육비 절감 효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더 중요한 문제는 거기에 교육방송의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

지식경제사회에서 EBS의 역할

점수경쟁에 들어선 우리 아이들은 오로지 서열에만 관심을 갖게 되므로 자기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부문의 인문학적 의미나 가치에는 눈을 돌릴 수가 없으며 오로지 정답맞추기라는 단순반복 노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학교에서 이뤄지는 ‘강제’야간‘자율’학습이든 보충학습이든 혹은 학원공부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발성이 없이 오직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상황인식 때문에 끌려 다니다 보니 아이들은 누군가의 ‘감독’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혼자서 학습프로그램을 보며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BS에서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수준의 학습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사교육비 절감효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 데 반하여, 하위층의 엥겔계수가 높아지는 어려운 경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가 오히려 증가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 끝자리 또한 안타깝습니다. 지금 2010학년도 2학기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학지원을 할까요? 학생자신은 물론 부모님도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런 문제에는 이제까지 전혀 관심을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많은 경우 결국 대문짝만한 소위 ‘배치표’라는 것을 앞에 두고 고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한의학과를 정점으로 그리고 그 끝에는 철학과가 늘어선 배치표를 보면서 자기수준에 맞는 학교의 과를 골라 엄청난 전형료를 부담하며 전략적으로 여러 학교에 원서를 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참 성장기임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밥도 잠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도달한 끝입니다. PISA와 TIMMS 등 국제학력평가에서 언제나 최상위권에 있으면서도 학습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에서는 바닥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지식경제사회’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때 말하는 지식은 더 이상 특정한 사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정보창고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알맞는 정보를 찾아내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상황과 문제를 얼마나 창의적 감각적으로 풀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능력입니다. 이런 일은 그 분야에 대한 열정과 흥미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한 체험을 가진 사람만이 제대로 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식 자체가 하루가 다르게 질적으로 양적으로 변화 증가하고 있으므로 ‘암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교양 문화 프로그램을 줄여서 그 돈과 시간으로 아무 효과도 없는 아니 우리의 미래를 망칠 학습 프로그램을 늘릴 것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이 그러한 프로그램을 충분히 즐김으로써 자아를 깨닫고 자신의 개성과 관심분야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주도적 학습 태도와 급변하는 IT환경 아래 이제는 피할 수 없는 평생학습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세를 일상화할 수 있도록 우리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 말로 EBS가 해야 할 일입니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교육전문기자를 양성함으로써 온 국민의 관심사인 ‘교육’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입시와 진학문제’분야에 대한 뉴스를 제대로 전달하고 평가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비용은 수능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적중도가 높다는 이유로 많이 팔리고 있는 EBS 수능문제집의 판매수익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KBS가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텔레비전수신료에 대한 배분율을 현재(3%)보다 훨씬 높이는 방식으로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나치게 일정에 쫓기지 말고, 후보자 면접결과 적임자가 없다면 다시 한 번 공개모집을 통하여 찾아내는 것이 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EBS를 이끌어 갈 막중한 책임자를 모시는 바른 길입니다. 그때 우리의 교육은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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