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가 되는데,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란 수사는 여전히 좀 의문스럽다. '이제 가을이 되었으니, 책을 좀 읽어야 겠군'이라는 자발적 자각이란 것이 정말 계절풍의 영향으로 인한 심 인지적 변화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 말랑한 미디어는 가을을 맞이하여, '책책책'이다. 납득되지 않는 시류에 편승한 기획이기도 하고, 기획보다 기사가 먼저 나갈 정도로 후다닥 준비했다. 글로 밥을 버는 사람들은 대개 기회가 되면 써야겠다 싶은 책 한권 정도는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이번 말랑한 미디어는 <미디어스> 편집국원들의 그런 자기 고백일런지도 모르겠다. <편집자>

<남쪽으로 튀어!>에 한 아버지가 있다.

이름은 ‘우에하라 이치로’, 현재 도쿄에 살고 있으며 직업은 프리라이터다. 그런데 말이 작가지, 그가 하는 일이라곤 “국가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기 싫다”며 식탁에 앉아 코털을 뽑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가끔 국민연금 납부를 독촉하는 구청 공무원이 올라치면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면 난 국민을 관두겠어!”라고 말다툼을 벌이기 일쑤다. 또 경찰을 면전에 두고 ‘국가의 개’, ‘관청의 벌레보다 싫다’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을 뿐 아니라 아들의 수학여행 경비가 수상하다며 교장과 충돌하고, 학교는 국가에 필요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며 “학교에 갈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책 표지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런 아버지를 둔 초등학교 6학년의 ‘지로’다. <남쪽으로 튀어!>는 철저하게 ‘지로’의 관점에서 아버지를 보고, 세상을 본다. 앞서 이야기한 아버지 또한 지로가 본 아버지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 지로에게 아버지는 ‘체제’, ‘착취’니 하는 이해 못하는 소리를 해대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그런 사람이다.

지로의 상식에서 아버지는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고, 학생은 당연히 학교에 다녀야 한다. 그런 지로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아버지는 한마디로 골칫거리이고 그런 아버지 때문에 피곤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만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로네 가족은 한 소동에 휘말리면서 도쿄에서의 생활을 접고 남쪽 오키나와 근처의 이리오모테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곳의 아버지는 도쿄에서 지로가 보아온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일하지 않던 아버지가 ‘일’을 하고 있다. 폐허가 가까웠던 집을 수리하고 밭을 일구고 밤늦게까지 ‘일’이라는 것을 한다. 지로의 눈에는 그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대가없이 가진 것들을 나누는 이웃과의 관계 또한 도쿄에서만 살았던 지로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지로네 가족은 이리오모테 섬에서 자급자족하며 평온함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삶도 잠시, ‘개발’열풍으로 지로네 가족의 삶은 또다시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이미 그때 지로의 눈에 철거에 저항하는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할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온한 삶을 짓밟는 개발업체가 그야말로 ‘민폐’를 끼치는 것으로 비췬다. 비로소 지로는 아버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학교’ 문제를 제외하면 말이다.

소설 <남쪽으로 튀어!>의 강점은 모든 것을 ‘지로’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독자의 시선 역시 지로를 따라간다. 지로는 도쿄에서는 아버지를 답답하게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로써 ‘아버지’가 세상에 민폐를 끼친 것이 아니라 도쿄라는 공간이, ‘국가’라는 체제가 ‘아버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이리오모테 섬에서의 지로네 가족의 삶을 동경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마음에 ‘이상향’을 그리게 하고 그 이상향을 깨려는 ‘개발’, ‘국가’에 화가 나게 만든다. 소설자체는 지로의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독자들의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물론 성장소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성장하기 이전인 도쿄에서의 지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노동, 세금, 학교 등에 대해 지로의 아버지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국가마저도. 이런 당연한 것들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 이 책을 손에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 오쿠다 히데오의 문체 자체가 간결하여 읽는 스트레스도 없는 <남쪽으로 튀어!>다.

국가가 없는 자유의 섬 ‘파이파티로마 섬’을 꿈꾸는 한 아버지가 있다. 그런 아버지가 지로를 통해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며 마친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서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 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지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를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