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봐도 신선하지는 않았다. 작년 후반기 SBS의 소소한 히트상품이 됐던 <미운 우리 새끼>와 <불타는 청춘>이 겹쳐서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뭔가 많이 다른, 더 깊은 무엇인가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엄마’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가족예능은 자식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긴 시간과 시도를 지나 비로소 엄마를 위한 무엇인가가 시작됐다.

KBS가 설날 파일럿으로 선보인 <엄마의 소개팅>은 대단히 미완성의 시도였다. 배우 황신혜, 가수 윤민수 그리고 개그우먼 박나래의 홀로 된 엄마들을 위해 소개팅을 마련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번이 파일럿이라 가능성을 보는 정도의 규모여서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거나 혹은 그냥 넘어가는 것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제대로 한다면 더 깊은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였다.

KBS 2TV 설 파일럿 예능 <엄마의 소개팅>

소개팅이라는 정해진 주제에 맞춘 듯한 전개로 인해 엄마와 자식 간의 속 깊은 이야기나 갈등 들을 제대로 드러낼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당 부분 형식적으로 강행(?)된 부분이 없지 않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소개팅이라는 결과에 꿰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스토리라인을 찾아낸다면 의외의 감동 예능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예능으로 포장하기가 다른 어떤 것보다 대단히 어려운 과정과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성급한 이야기지만 만약 이 파일럿이 정규 편성을 하게 된다면 상당히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KBS 2TV 설 파일럿 예능 <엄마의 소개팅>

또한 출연자를 섭외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굳이 엄마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편모거나 편부인 연예인이 얼마나 되는지가 우선 문제겠지만 한편으로는 꼭 연예인 대상일 필요도 없을 수 있다. 어쩌면 <인간극장> 스타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딱히 문제가 될까 싶다.

이를테면 외출을 위해 엄마에게 화장을 시켜주는 황신혜나 박나래의 모습. 엄마와 딸의 입장이 바뀐 듯한 풍경. 그렇게 살갑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엄마를 위한 꽃단장 일정을 함께한 아들의 평소와는 다른, 아니 어쩌면 평생 처음인 모습. 소개팅 하는 장면들보다 그런 준비과정이 더 눈에 들어왔으며 그것은 굳이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3,40대 이상의 시청자에게는 딱히 남의 일이 아닌 그야말로 리얼하게 제시되는 화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KBS 2TV 설 파일럿 예능 <엄마의 소개팅>

50대 후반 혹은 60대, 자식들은 다 커서 이미 부모 품을 벗어났다. 외롭긴 한데 그렇다고 양로원 문턱을 넘기에는 젊고, 그렇다고 젊은이들처럼 친구나 애인을 찾을 통로가 아예 없는 세대다. 수명은 늘어나 관계의 필요는 더 커졌지만 참고 견디는 데 더 익숙한 엄마, 아버지들을 위한 관계 프로젝트. <엄마의 소개팅>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이미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이 진작 눈을 돌렸어야 할 소재였다. 한국의 평균수명은 이미 80세를 넘긴 상황이다. 장수가 인간의 공통의 소망이자 문명의 혜택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상황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소망은 절망이 되고, 고통이 된다. 그 조용하고 무거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소개팅>은 그 작은 시작의 의미였다. 과연 실버예능이 통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의 문은 열릴 수 있을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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