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이하 WEF)의 ‘2009년 국가경쟁력 평가결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평가 대상 133개국 가운데 19위를 기록했단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13위였다고 하니 6계단이 떨어진 것이다. 과연 왜 떨어졌을까? 혹은 떨어진 것이 맞기나 한 것일까?

그런데 <조선일보>는 9일자 신문을 통해 한탄스런 어조로 “지난해 2계단 떨엉진 데 이어 올해 6계단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떨어진 원인으로 ‘강성노조’와 ‘정치불안’을 꼽았다. '강성노조 때문'이라는 원인 분석은 왜곡을 넘어 악의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조선일보>는 기사의 첫머리에서부터 국가경쟁력이 떨어진 이유를 두고 “국제적 시선을 모은 쌍용차 파업사태, 화문연대 죽창시위 같은 후진적 노사관계와 이로 인한 사회불안, 정치적 갈등이 주된 요인”이라고 썼다. 그 근거는 아주 단순하다. WEF가 “‘노사 간 협력’ 부분이 100위권 밖에 밀려 있다”고 지적한 것에 따른 것이다.(참고로 WEF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노사 간 협력은 133개국 중 131위를 기록했다) 이것을 풀이하면 <조선일보>의 논리는 노사 간 협력이 잘 되지 않는 모든 책임을 ‘강성노조’ 때문이라고 규정해버린 것이다.

▲ 9월 9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국가경쟁력 떨어진 것은 ‘강성노조’ 탓?

<조선일보>가 ‘강성노조’가 문제라고 치부해버린 사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5월 17일 대전에서 열렸던 화물연대 집회가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쌍용자동차의 파업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 모두 그 원인이 사측과 정부에 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나지 않았던가.

5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화물연대 집회는 고 박종태 전 화물연대 광주지부 지회장의 영결식이 있던 날이었다. 대한통운에 건당 운송료 920원에서 30원 인상을 요구하다 목숨을 끊었던 박 지회장의 추모집회가 예정된 날이었지만 그 추모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던 공권력으로 인해 당일 400여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연행됐고, 그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도 연행됐다고 확인됐었다.

<조선일보>는 이번 기사처럼 당시에도 ‘죽창’이 등장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깃대’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그 후 만장의 깃대를 제작했던 업체는 “대나무를 낫으로 쳐내다 보니까 우연히 약간 비스듬하게 잘린 것도 나온 것”이라며 ‘죽창’, ‘죽봉’ 논란을 일축시켰다. 결국 <조선일보> 말대로 ‘죽창’이 등장했던 화물연대 집회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낮아졌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확인도 해보지 않고 ‘죽창’이라고 갈겨쓴 기사를 버젓이, 그것도 연일 지속적으로 내보낸 <조선일보> 탓이 아닐까?

<조선일보>는 국가경쟁력 악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쌍용차 파업을 들었다. 그러나 쌍용차 노조의 파업은 무능했던 정부로부터 시작됐다. 2004년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될 때부터 쌍용차 사태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상하이 자동차는 투자약속을 지키지 않고 쌍용차 기술을 빼낸 채 공장을 법정관리 상태로 내몬 것이다. 당시 노조와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상하이 자동차 매각에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들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쌍용차는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 문제를 그저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지켜보기만 했다. 전 정부의 실패를 바로 잡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나몰라라’하며 개입하지 않았다.

그렇게 쌍용차 사태는 개입을 회피한 ‘정부’와 구조조정을 내세워 노동자들의 양보에만 매달리는 ‘사측’과 ‘채권단’, ‘법적관리인’에 쌍용차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이 있었다. 또한 쌍용차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그저 ‘불법폭력’으로만 다뤘던 <조선일보>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호들갑을 떨고 있는 국가경쟁력이 악화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봐야할까?

국가경쟁력, 떨어진 것이 맞기나 하나?

<헤럴드경제>는 오늘자 신문을 통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조사기관별로 들쭉날쭉하다”며 WEF의 순위가 객관성과 공신력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지난 5월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27위로 지난해보다 4단계 상승했다. 또 국내기관인 산업정책연구원(IPS)에 따르면 23위로 지난해보다 1단계 내려갔지만 조사대상국의 변화로 사실상 작년과 동일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에 WEF가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19위로 작년에 비해 6단계 떨어졌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를 두고 <헤럴드경제>는 “WEF의 경우 국내 최고경영자 11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지만 각 분야의 대표성을 담보할 만큼 정밀한 표본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의 ‘한국, 국가경쟁력 19위로 하락… 강성노조·정치불안 악영향’기사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설문조사가 나왔을 때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가졌는지는 따져보지 않은 채 그저 강성노조 탓하는 조선일보.

때문에 오늘의 <조선일보> 이 기사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국가경쟁력 하락은 “‘나’(조선일보) 때문이오”라는 고백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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