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 MC가 게스트들에게 토크를 자제시키는 이상한 풍경. 사실 게스트들이 말이 잘 하지 못해서 그것을 끌어내라고 MC가 존재하는 것인데, 오히려 자제시킨다면 이것이 바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라 할 것이다. 그것을 해피투게더 설특집이 해냈다. 27년이란 긴 세월을 쌓아온 우정만큼이나 그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에피소드가 있었고, 해피투게더에는 좀처럼 없었던 두 주 분량의 토크를 뽑아냈다. 이 정도면 간만에 특집이라는 말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KBS2 해피투게더 화면 캡처

이들의 활약은 시청률로도 확연히 드러났다. 이날 방송은 닐슨 5.2%로 지난주 3.5%에서 비약적인 반등을 보였다. 다른 때보다 일찍 귀성이 시작된 날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잠재적 시청률은 이보다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아마도 다음 주 시청률은 이보다 더 높게 나올 것으로 예상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수다라면 둘째 갈 일 없는 유재석조차 끼어들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물 만난 토크 드림팀이었다. 나이가 어리다면 알지 못할 이야기도 없지 않았지만 설날이라는 분위기에 맞는 복고적 토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김용만, 지석진, 김수용, 박수홍 그리고 유재석까지 이 오래 된 개그맨들은 조동아리, 감자골 등의 이름이 있었다. 그 중 조동아리는 아침까지 수다를 떤다는 의미였다는데 과연 그러했다.

오랜만에 뭉친 중년 개그맨들의 토크 의욕은 차고 넘쳤다. 오디오까지 맞물리는 카오스 상태의 토크쇼를 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활기가 가득했다. 그들의 경력만큼이나 그들의 토크큰 요즘 트렌드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묵은 장맛 같은 중년개그맨들의 올드패션 개그는 그 자체로도 웃기에 충분했지만 향수도 보너스로 함께 받은 즐거움이 있었다.

소개와 근황만 다루는데도 한 시간 반이 걸릴 정도로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토록 적극적으로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게스트는 없었다. 해피투게더만이 아니라 어떤 토크쇼에서도 이토록 유기적으로 치고받는 콩트 같은 분위기는 일부러 만들라고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엠씨 유재석, 박명수를 비롯해서 개그계의 이제는 최고참에 속하는 그들의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쌓인 관계의 작용이어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KBS2 해피투게더 화면 캡처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느낀 것은 이대로 복고 스타일의 토크쇼를 하나 시도해봐도 좋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들게 했다. 차고 넘친 토크 덕분에 다음 주에도 이어진다지만 왠지 그래도 아쉬울 것 같은 느낌이 벌써부터 들기 때문이다.

비록 거의 30년 간 개그맨을 해왔다지만 유재석 말고는 그다지 대중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이 일단 강점이다. 김용만은 방송을 오래 떠나 있었고, 박수홍과 김수용도 내내 잠잠하다가 최근에 주목 받기 시작했다. 지석진이 그나마 최근 런닝맨을 통해 꾸준히 활동을 했지만 분명히 런닝맨에서의 모습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해피투게더에서의 모습이 훨씬 더 흥미롭고, 능동적이었다.

팀 토크의 가능성을 봤다는 것이다. 그것은 라디오스타에서 오래 보여주던 부분이었지만 다른 데서는 잘되지 않은 포맷이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되기만 한다면 분명 토크 어벤져스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상 지난 추석 파일럿을 통해 정규 편성된 많은 예능들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부진했다. 이번 설날에도 역시나 적잖은 파일럿 방송들이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눈에 확 들어오는 파일럿은 아직까지는 없는 편이다. 그 고민에 해피투게더 설특집이 하나의 통로를 열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