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을 용에 비유하는 말 중에 역린(逆鱗)이란 것이 있다. <한비자(韓非子)> 세난편에 나오는 말이다. 용의 목 아래에 다른 비늘과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역린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고도 했다.

이건 가히, 역린이라고 할 법하다. 2PM 박재범 말이다. 그는 사과를 했고, 당분간 자숙하겠다고 했지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호사가들은 '진즉'부터 유승준과 비교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무조건 떠나라 하고 있다.

읽고 또 읽어봤다. 그것도 몇 년 전에,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이러쿵저러쿵 써 논 말이라고 하더라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이 난리가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어 읽고 또 읽어봤다. 그런데 도통 모르겠다. 뭐가 문제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뭐 대단한 것이라고 이 난리법석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나름 <미디어스>에서 연예부를 자처해왔는데, 대중과 교감은커녕 분노가 발생한 메커니즘조차 분석이 안 되니 답답하고 또 답답한 노릇이다.

▲ 2PM ⓒ2PM 공식 홈페이지

이미 닳고 헤져 너덜너덜해진 사건이지만 다시 한 번 추려보자. 2PM의 박재범은 몇 년 전 가수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다. 그의 국적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그는 미국에서 자랐고, 미국의 사고방식 이외의 것들에 대한 경험이 없는 10대 소년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꼰대'스러운 전제를 하나 하자면, 10대들은 제각각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어딘지 모르게 고만고만한 구석이 있다.

안 봐도 DVD, 미국에서 온 10대 소년 박재범은 힘들었을 테다. 납득이 되질 않는 한국 학교의 규율에 적응해야 했을 것이고, 라면 스프를 모아두었다가 따로 끓여 먹었다는 사실이 무용담이 될 정도이니 합숙소 생활은 또 어떻겠는가. 10대 소년이 성공, 그 하나만 바라보고 참기에는 모든 상황이 그야말로 견디기 힘들었을 테다. 박재범이 남긴 글들은 그런 것이다.

난 구구절절하게 그렇게 읽혔다. 물론, 표현이 경박하고 격하다. 젠더 감수성에서 보자면, 극악하기 그지없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혹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성 평등적 지향을 담지해내지 못한 박재범의 낙후된 언어 감수성인가? 이거 왜들 이러시나. 그건, 남자 연예인들이 나이트에서 여자 '꼬신' 얘기를 밥반찬 보다 더 맛나게 저녁 버라이어티에서 잡수시는 분들이 입에 올릴만한 얘기가 못된다. 민망하지도 않은가. 인터넷까지 갈 것도 없이 케이블로만 넘어가고 '싼티'나고 원초적으로 후끈한 경험담들이 마르고 닳도록 있는데 10대 소년이 사적 공간에서 친구와 이러쿵저러쿵 한 걸 두고 천하의 잡놈 취급을 하는 고상한 심보란 대체 뭔지.

인정한다. 몇몇 표현에 있어, 박재범이 과하게 경박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 부분에서 박재범은 문제의식을 인지했고, 사과했고, 정정의 의지를 비췄다. 실제 그의 요즘 생활이 어떨지 모르지만, 확실히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사람은 철도 빨리 드는 법이다. 악어의 눈물일지라도, 그가 반성을 입에 올린 순간 이 문제는 끝났어야 했다. 말이 나와 말이지 박재범 정도의 나이에 아니 그보다 더 먹은 치들중에서도 망나니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와 당신이 즐겨보는 <연애불변의 법칙>같은 프로그램만 틀어 봐도 수두룩 빽빽이다.

그렇다면, 또 뭐가 문제인가? 박재범의 미심쩍은 국적 아니면 그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우선, 박재범의 국적 부분은 그가 만 21살이 되기 전까진 합법적으로 이중국적이 허용된다. 87년 생인 그는 아직 선택의 시간이 남아있다. 국적 부분에서 한국 남자들이 도저히 관대해질 수 없는 이유 일랑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만, 이것 역시 나무랄 것이 못된다. 그가 어떤 국적을 선택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그가 설령 미국 국적을 선택한다하더라도 그의 삶을 나무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말이다.

흔한 농담으로 그것은 'It's yourself' 즉, 박재범이 선택할 문제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이다. 그가 도저히 군대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당신이 분노하지 않더라도 그는 국적을 포기하는 순간 그가 지금 누리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 국적을 포기한다면 그 역시 구조의 피해자인 것이지 한국 남성들을 향한 가해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은 이번 사건과 하등의 관련도, 상관도 없다. 해외파 출신들의 세련됨에 거의 맹목적인 열광을 보내다가 무슨 꼬투리라도 하나 밟히면 오히려 그 출신을 문제 삼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찌질'한 콤플렉스이다.

자, 정신들을 되찾자. 그를 '짐승돌'로 불렀던 당신들이다. 젊은 남성을 짐승에 비유하는 욕망 체계란 어떤 것인가? 당신의 욕망은 천박하고 혹은 투박하기 이를 수 없지만, 그 욕망의 대상만은 순정하고 혹은 순결해야 한다는 도착증이 아니라면 이제 그만하자. 연예인이 무슨 나랏님 노릇도 아니고 까닭 없는 도덕론의 잣대로 재단하는 후진적 행태도 좀 자제하자. 얼마 전 정수근에 이어,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들 여론재판으로 단두대에 그만 세우잔 말이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2PM이 활동을 중단해야만 속이 시원할텐가?

연예 찌라시 역시 문제를 확대하지 말라. 포털도 좀 자제하라. 얼핏 중립적으로 보이는 스트레이트 기사들을 남발하고 이를 다시 유통시켜주지 말란 말이다. 네티즌 반응을 근거로 삼는 무한 자기 복제 일랑 당장 그만 두란 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네티즌을 왕으로 만들어 박재범이 또 누가 역린을 건드렸네, 아닙네 고자질을 할 셈이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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