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일요일 오후. 일찌감치 덕수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은 시민들, 바자회 시작 시간이 임박하자 물건이 진열된 판매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6일 오후 1시, 본부석에서 “지금부터 물건을 판매하세요”라며 바자회의 시작을 알렸다. 시민들은 눈썹을 날리듯 찜해놓은 물건을 챙겼다. 오후 4시부터는 연예인, 정치인들이 내놓은 애장품을 경매했다. 벼룩시장부터 고가의 경매까지 ‘언론악법 원천무효’의 선전선동은 이미 의미 없는 날이었다.

탐탐한 바자회, 말 그대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사진/ 유영주

덕수궁 뒤 덕수초등학교 운동장은 이날 하루종일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여성, 가족 단위 시민들이 압도적이었다.

가방을 고르는 시민들

신발을 고르는 시민들

옷을 고르는 시민들

행사 시작을 알리자 여성삼국연합(소울드레서/쌍코/화장발)이 준비한 화장품, 악세사리, 잡화 코너에 가장 많은 시민들이 몰렸다. 고급화장품이 시중가의 2-30% 가격, 한 사람에게 3개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는 본부 방침에 따라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르고도 10,000원이 넘는 경우가 없었다. 화장품은 일찌감치 매진, 세 박스나 준비한 악세사리도 인기 절정을 이뤘다.

여성삼국연합의 매장을 운영한 아이디 ciel은 “소울드레서 회원과 소핑몰을 운영하는 회원 등이 물건을 후원해줬다”고 말하고 “오늘 3개조로 나눴는데 대략 4-50명 정도가 자원봉사에 나섰다”며 뿌듯해 했다.

'삼국연합' 회원들이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있다.

탐탐한 바자회 대성황의 일등 주역은 여성이었다.

여성삼국연합 건너편에는 화가, 만화가들이 자리를 잡았다. 하민서, 이홍기, 금정수, 최규석, 윤태호, 박철권, 최호철, 고경일, 홍재승, 김영우 등이 시민과 마주 앉아 커리커쳐를 그려주며 행사의 취지를 함께 나눴다. 유승하 우리만화연대 운영자는 “전화 한 통화에 너도나도 참여하겠다고 해서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화가, 만화가 누구 할 것 없이 흔쾌히 응했다”며 회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만화가, 화가들도 자리를 같이 했다.

메이크업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분들도 마음은 하나다.

의성군 농민회는 오늘 새벽 쌀 2톤, 사과 1톤, 마늘 600킬로그램을 차에 싣고 서울로 올라왔다. 김상화 의성군 농민회 사무국장은 “언론악법 저지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우리 먹거리를 많이 홍보하겠다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상화 사무국장은 “의성군 농민회는 판매 수익금의 상당 액수를 주최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하나마나한 투표

언소주는 ‘신종플루 이명박플루 예방’을 컨셉으로 행사에 참여했다. 언소주가 준비한 것은 생수통 2개 분량의 수정과와 수제 케익.쿠기 600여 개 등 두 종류. 수정과와 수제쿠키에 ‘신종플루, 이명박플루 예방’의 소망을 담았다.

언소주는 수정과와 수제제과를 준비했다.

쿠키를 만들어온 최인선 언소주 회원은 “집에서 애들한테만 만들어주던 것을 만들어와서 시민들에게 나눠주게 돼 감격스럽다”며 “이런 자리에 온 건 처음인데 정말 즐겁고 보람된 하루였다”라고 말했다.

문국현, 정동영, 유시민 지지자들도 제각기 천막 한두 동을 차지, 준비해온 바자회 물품을 판매하는 등 시민들과 함께 했다.

정치인 애장품, 최고가 최문순 다기세트, 최저가 강기갑 밀짚모자

오후 4시 연예인, 정치인의 애장품 경매가 시작됐다. 최문순 의원이 내놓은 은나노 세트가 최고액인 6백만 원에 팔렸고, 정치인으로는 강기갑 의원이 만경대에서 구입해 소장하다 내놓은 밀짚모자가 최소액인 14만 원에 낙찰됐다.

최문순 의원이 단상에 올라 “여러분들 이명박 정권 하에 대단히 힘들죠. 위로 말씀 한 마디 하겠습니다. 저보다 나이 드신 분들은 잠깐 귀를 막아주세요. ‘니들이 고생이 많다’”고 하자 시민들이 환호로 답했다. 타이밍도 경매 분위기의 절정을 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이름이 새겨진 다기세트, 시작은 100만 원 부터였다. 140, 160, 200만 원으로 올라가더니, 360, 380, 400, 500만 원으로 치달았다. 한 시민이 600만 원을 사인했다. 최문순의 애장품을 차지한 이 시민은 부산에서 올라온 참교육학부모회 회원으로 “노무현 살아 생전에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었다. 늘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조금이라도 위안 받으려고 금액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시민과 맞절을 한 최문순 의원은 MBC 사장 당시 'PD수첩‘팀으로부터 받은 만년필을 보너스로 전달했다.

강기갑 의원은 “언론을 지키내야 통일도 빨리 이뤄지겠다 해서, 평양 방문 때 사온 김일성 장군이 썼던 것과 같은 밀짚모자와 내놨다”며 애장품을 소개했다. 강기갑 의원은 “보너스로 올 가을 유기농 농사로 수확하게 될 밤 한 포대를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낙찰가는 14만 원에 그쳤다. 뜻깊은 애장품이기는 하나 언론악법과의 연관성이 부족해서였던듯 하다.

시작은 연예인이 보내온 애장품부터 경매가 시작됐다. 이하늘 씨가 보내온 운동화는 7만 원에, 이승환이 내놓은 무대의상은 14만 원에, 최경주가 내놓은 골프채는 22만 원에, 이상은이 내놓은 사진은 7만 원에 새 주인을 만났다.

정세균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와 클린턴의 모자를 셋트로 내놓아 45만 원을 기증했고, 노회찬 전 의원은 신영복 선생의 글을 내놓아 230만 원을 기증했다.

심상정 전 의원은 효림스님의 글귀를 기증했는데, 뽀뽀를 보너스로 내놓아 이날 최고의 이벤트 몰이를 했다. 심상정 전 의원은 애장품은 70만 원에 주인을 찾았는데, 이 주인의 직업은 치과의사, 이 의사는 심상정 의원이 뽀뽀를 해주면 평생 치과 치료를 해주겠다고 응대했다. 무대 위에서 이 약속이 이루어져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정동영 의원은 체게바라 액자를, 천정배 의원은 홍성담 글을, 추미애 의원은 스카프를, 한명숙 전 총리는 부엉이 시리즈 7마리를 내놓았다. 또 이해찬 전 총리는 시계를, 이강래 의원은 김대중 친필휘호 다기세트, 노무현. 권양숙의 은수저 세트와 시계를 두루 내놓았다. 김재윤 의원은 그림 두 점과 함께 제주도 2박3일 숙박을 제공했다.

유시민 전 의원은 넥타이를, 문국현 의원은 애장 사진을. 안희정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을 고재열 기자는 김욱 화백의 그림을 각각 내놓았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넥타이 두 개를 소개했다. 하나는 경매를, 하나는 언론노조에서 보관하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내놓기로 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장소를 제공해준 덕수초등학교 측에 감사의 박수를 잊지 않았다.

백기완 선생은 글 두 점을 내놓았다. '널마'(대륙)는 MBC노조가. '활활'은 KBS사원행동이 손에 넣었다.

오늘 탐탐한 바자회의 경매는 정치인들의 잔치였고, 경매 결과는 주최측의 예상을 웃돌았다. 시민들의 참여 열기가 정치인들의 예상을 넘은 것이기도 하다. 한편 시민들이 보내온 애장품들은 정치인의 애장품에 밀려 미처 소개되지 못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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