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드라마를 좋아하십니까?

한국사회에서 드라마란 가장 값싼 취향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향유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십편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개인차들이 있긴 하지만 누구나 족히 수백편을 될 드라마들을 섭렵하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이번 주말 말랑한 미디어는 바로 그 드라마 속 주인공, 특이 여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언제나 오늘의 삶을 반영하거나 혹은 비트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미실을 필연적으로 당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박기자는 트랜드의 첨단이 실은 극히 소수의 힘에 의해 끌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혜나는 드라마에 관한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논쟁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의 위상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해왔지만, 엄청난 양적 누적 과정을 통해 천지개벽할 진전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오늘 드마라 속 여주인공들은 어제의 진부함에서 벗어나 투쟁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권력을 위해 기꺼이 욕망을 희생하기도 한다. 물론, 게중에는 여전히 완벽한 전형성에 여전히 속박되어 있는 이도 있지만 말이다. 이번 주말 말랑한 미디어는 미실, 박기자 그리고 강혜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신은 누구를 지지하는가? - 편집자 주

드라마 <스타일>은 그 외래어가 어떤 토착어보다도 깊이 우리네 일상에 강제력을 갖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드라마이다. 국내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페라리가 등장했고, 첨단에 또 첨단의 유행을 대변한다는 '잇백'들이 출몰하는 광경에 넋을 잃는 호들갑이 있지만, 사실 그건 거의 모든 드라마가 언제든 재현할 수 있는 전형적 세계 일 뿐이다.

그래서 <스타일>은 진부한 드라마이다. 물론, 진부하다는 것만으로 드라마가 악덕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 50%에 도전하고 있는 <선덕여왕>을 딱히 참신한 사극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바로 얼마 전에 끝난 <아내의 유혹>, 현재 인기리에 방송중인 <솔약국집 아들들> 같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혹은 분명히 언젠가 본 듯한 드라마들이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스타일>에는 백마 대신 외제차를 타는, 티 없이 순수하고 게다가 대책 없이 정의롭기까지 한 남자(류시원)가 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것을 기본 옵션으로 하며, 세상에 둘도 없는 신데렐라의 운명이건만 본인만 그걸 모르는 여자 주인공(이지아)이 있다. 그 둘을 축으로 재력이 차고 넘쳐 음모와 배신 밖에 딱히 할 일이 없어 뵈는 철딱서니 없는 최상류 계층들이 복닥거린다. 앞으로 전개 될 이야기는 당신이 상상하는 그대로 일 테다. 주인공 둘이 모두를 구원할 것이고, 끝내 그 모두는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꽉 짜여 진 공식에 넌덜머리가 난다해도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데 하등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당신은 충분히 <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 이 지극히 예측 가능한 드라마의 공간적 풍경이 잡지사이기 때문이냐고? 아니다. 잡시사여도 되고, 딱히 잡지가사 아니라도 상관없다. 알고 봐도 언제나 조마조마한 엇갈린 로맨스들이 토핑 되었기 때문에? 잘못 짚었다. 무려 1억 원 고료에 당선됐던 원작의 힘 때문에? 아니다. 그 힘 역시, 텍스트가 영상으로 바뀌면서 많이 단순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딱 하나 김혜수, 바로 김혜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 <스타일>의 김혜수

<스타일>은 철저히 김혜수에 의한, 김혜수를 위한, 김혜수가 있어 가능하고 또 볼 만한 드라마이다. 미디어스에 열정적으로 [TV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문화평론가 하재근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기다린 이유가 김혜수 때문임을 진즉에 간파했었다. 역시 그랬다. 류시원이 요리하는 장면에선 '맛대맛'이 떠올랐고, 이지아가 나올 때면, 그녀 말고 누가 더 그 역에 어울릴까하는 잡생각이 들어 집중이 안됐지만, 김혜수 만큼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타이트한 시스루 원피스 한 벌 걸쳤을 뿐인데 그녀의 아우라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스타일>인지를 단박에 깨우치게 할 정도로 빛나는 것이었다.

언젠가 부터 '패셔니스타'라는 세련된 표현이 연예계의 한 경향을 짚어주는 범용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건 아마 '신세대 건강미인'이라 불리던 여배우 김혜수부터 일 것이다. 말하자면 김혜수는 미디어가 촌스럽기 그지없는 표현으로 밖에 패션을 이야기 하지 못하던 시절부터 지금의 패셔니스타까지를 관통하는 아이콘이자 지배자이다. '김혜수처럼...'은 국내 성형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장탄식이자, 표준체형마저 변모시킨 외마디였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그녀도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그녀는 모든 '패셔니스타'의 원조이자 원형질이며 원인이다.

<스타일>의 안하무인 편집장 박기자 역에 김혜수 말고 다른 이를 떠올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기자는 어쩌면 모든 칙릿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그런 선배이자 리더이다. 자기 일을 끔찍하게 여기고, 그래서 도도하지만 동시에 외로울 수 밖에 없고, 자기중심적이되 언제나 또 자기만 합리화된다.

따라서 김혜수는 이지아를 무시하고, 류시원을 애송이 취급하지만 손회장에게만은 절대 복종한다. 얼핏 보면, 경쟁사회에 잘 적응해있다는 것 외에는 딱히 행동의 동기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칙릿 소설의 기본적인 매력이 일반적 행동의 단면들에 대한 2030적 세대 성찰이라고 했을 때, 이 드라마는 애당초 그것을 포기한 채 질주했다. 이토록 단선화 된 박기자 캐릭터를 김혜수는 단조롭지 않게 그리고 비루해 보이지 않게 잡아내고 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명되지 않더라고, 보는 이의 소비 감각에 만족을 안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기 말이다.

그래서 드라마 <스타일>을 꾸려 나가는 힘은 우리가 상상하던 김혜수 그 자체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왠지 '엣지'있게 살 것 같은 여자, 내놓으라 하는 숱한 패셔니스타들 중에서도 가장 과감할 것 같은 여자, 그리고 자신의 삶을 야무지게 장악하고 있을 법한 여자라고 하는 실제하지 않지만 언제나 그럴싸하게 존재해왔던 세계 말이다. 그녀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패션 피플'이고, 욕망과 현실의 경계에서 뭇남성들을 머뭇거리게 하는 묘한 존재감이다.

물론, 누군가는 김혜수 보다 더 감각적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김혜수 보다 더 훌륭한 아이템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다. 단순히 패션이 취향과 유행만을 설명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패션의 완성은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패션의 궁극은 '미학'과 '혁신'의 경계에서의 완성이다. 지금 감히 '미학'과 '혁신'의 경계라고 하는 고차원의 추상에서 논할 만한 연예인이 누가 있겠는가? 오로지 김혜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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