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세론’이 한창이다. 민주당 안에서 그에게 대드는 후보들은 가차 없이 나가떨어지고 있다. ‘친문 패권주의’를 지적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지율이 8순위 밖으로 밀려나며 한국갤럽조사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날선 입담을 자랑하던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친문 패권주의’를 내비쳤다가 화들짝 덴 뒤로는 재론을 삼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너무 못마땅하다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자살골 사태도 벌어진다. 강연재 국민의당 부대변인은 지난 22일 “박정희 아님 노무현, 박근혜 아님 문재인, 좌 아니면 우. 도무지 합리적 이성이란 걸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는 놃고 경쟁은 치열하다. 구태 국민이 새로운 시대 못 열어”라는 트위터 글을 남겼다가 뭇매를 맞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3일 오후 전남 나주시 광주전남연구원에서 정책간단회를 열고 주민들의 요구를 청취하고 있다.(연합뉴스)

모두 다 ‘문재인 대세론’이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들이다. 여러 분석을 빌리자면, 문재인의 이런 ‘반탄강기’(무협지 전문용어로, 몸 주변에 공력을 서리게 하여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반대로 튕겨내는 힘을 말한다)는 그 스스로의 것이 아니다. 노무현의 적자라는 후광, 이 후광에 정권교체에 대한 많은 유권자의 열망이 쌓인 덕분인 듯하다. 문에 대한 비판을 정권교체의 가능성에 대한 공격이자 정권교체를 곤경에 빠뜨리는 행위로 받아들이는 집단심리가 깔려 있다. 문이 아니면, 이른바 ‘제3지대’라 불리는 정체성이 애매한 세력(비박세력이든 부역세력이든)과 연대하는 것밖에 없는데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심리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마음이 같아지지는 않는다. 언제나 상황은 주어진(given)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지 비판적으로 받아들일지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달린 문제다. 한 개인으로서는 필자는 지금 상황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첫째, 엄밀히 말해 문재인은 노무현의 적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자로 치자면 안희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폐족까지 거론했던 노무현의 유지를 그나마 지키면서 감옥살이를 통해 책임질 건 지면서 자신의 힘으로(물론 온전히 자신의 힘만은 아닐 테지만) 정치적 시민권을 다시 획득한 사람은 과거 친노세력 중에서 안희정이 유일하기까지 하다.

둘째, 문재인에 대한 비판이 정권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위험에 빠뜨리지도 않고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절차와 규칙에 따라 연대할 수 있는 생산적인 상생의 정치는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야권 연대가 ‘대의를 위해 네가 끓어!’라는 힘겨루기로 일관했다면, 그렇지 않을 정치적 가능성이 열렸기에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안철수가 제기했고 문재인도 동의했던 결선투표 도입에 대해 문재인은 이번에 너무나 소극적이고 속보이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연일 ‘대선은 나와 문재인의 대결’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이번엔 당신에게 양보하라고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안철수의 말은 적어도 문재인에게는 정치적 비수 그 자체이지 싶다. 문에 대한 비판을 정권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치적 감성은 이를 포괄할 정도로 섬세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셋째, 문재인에게는 이미 한 번의 기회가 왔고, 불행하게도 그는 이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 문재인은 재수를 했기에 이미 검증이 끝난 사람이라고 대응하고 있지만, 글쎄 수많은 날선 비판을 제대로 당해낼 수 있는 답변은 아닌 듯하다. 재수하는 동안 발달장애 수준의 대통령 아래에서 애꿎은 수많은 국민들은 개고생했고, 희대의 국정 농단 사태는 터졌으며, 지난 4월 총선 때까지 민주당은 제대로 야당 구실을 제대로 못했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의 득표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못 믿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고,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이는 드러나고 있다. 역설적으로, 문재인 캠프에서 펼치는 ‘대세론’이나 ‘기정사실화론’은 확장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낳은 조바심으로 읽힌다.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은 5개월만에 꺾였다. 한국갤럽이 지난 17~19일 조사해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지지율은 2016년 9월27~29일 조사에서 24% 이후 41%까지 꾸준히 상승해오다, 지난주 37%로 4%포인트 하락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증시 용어를 빌리자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집회 전후에 시작된 대세 상승기는 끝난 것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스스로를 진보 성향이라고 밝힌 응답자도 줄었다. 한국갤럽조사에서 스스로의 성향을 진보라고 밝히는 응답자 비율은 꾸준히 늘어왔는데, 1월10~12일 조사에서 36.0%이던 이 비율이 일주일만에 33.0%로 하락한 것이다. 무슨 일일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가 들려온다. “Oh baby, baby How was I supposed to know That something wasn't right here” (오 그대여,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베이비 원 모어 타임> 중에서)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