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수근이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다. 사건이 알려진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았고, KBO는 상벌위원회 조차 소집하지 않았지만, 일사천리로 정수근을 그라운드 담장 너머에 묻기로 했고, 호들갑을 떨던 이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다.

롯데는 하루 만에 그를 가차 없이 버렸다. 나만해도 5분은 넘게 생각해봤건만,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그에 대한 생각을 5분밖에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집단적 열정,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그 극렬한 롯데 팬들조차 시국이 어느 때인데 망나니까지 돌보느냐며 오로지 가을 야구만 쫒고 있다. 정수근의 그 사건이 알려진 어제 롯데는 졌고, 오늘은 경기가 없었다.

차치한다. 정확한 진실이 무엇인지 모를 지경이다. 애당초 있기나 한 것인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형성된 쟁점군만 추리면 이렇다. 사건의 진실을 캐(는 척하)는 보도들이 있고, 정수근의 징계를 해제한 KBO의 무원칙을 까는 보도들이 있고, 공인으로서 야구선수의 도덕론을 제기하는 보도들이 있다. 참고로 롯데는 늦은 시간 맥주 집에 간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밝혔다.

▲ 사실과 다른 정수근 선수의 주점 '행패' 사건을 보도한 연합뉴스 ⓒ 연합뉴스 캡처

한 가지만 묻자. 진짜 쟁점이 이런 너저분한 것들인가? 아니다. 명백한 오보가 쟁점이다. 정수근 사건의 실상은 대형 오보 사건이란 말이다.

9월 1일 오전 7시 45분 연합뉴스는 '롯데 정수근 선수, 주점서 행패'라는 제목의 기사를 포털에 송고했다.(최종 수정 시간은 9월 1일 11시 21분으로 되어있다. 수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고쳐졌고, 혹시 제목도 바뀌었는지는 애석하게도 쉽사리 바뀌는 인터넷 뉴스에서는 정확히 확인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그걸 뒤쫓지 못했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정 된 기사도 이미 대형 오보기 때문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1일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정 씨는 8월31일 오후 11시45분께 해운대구 재송동 모 주점에서 웃통을 벗은 채 소리를 지르고 종업원에게 욕설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려 경찰이 긴급 출동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주점 업주가 "다시 소란을 피우면 신고하겠다"고 해 경찰이 정 씨를 연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추측건대, 수정 과정에서 시간은 일단 바뀐 것 같다.

애초 새벽이라고 알려졌던 시간이 정정된 것은 사건이 알려지고 조금 뒤였다. 이후 주요한 팩트들의 변천사는 마르고 닳도록 봤을 테니 따로 읊지 않겠다. 허위 신고였고, 욕설을 하지 않았고, 행패는 있지도 않았고, 경찰은 가게에 들어와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정수근을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근데 한 편의 ‘소설’같은 기사가 떡하니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게다가 기사는 "정 씨는 지난해 7월16일 새벽 만취상태로 경비원과 경찰관을 잇달아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고, 다음날 곧바로 무기한 실격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가 지난 6월 징계가 풀려 지난달 12일 그라운드에 복귀했다"로 마무리되었다. 반복되는 ‘범죄’의 양상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한, 그래서 얼핏 가치중립적으로 과거의 사실을 환기시켜 준 것처럼 보이지만 효과는 정수근의 과거 이력을 교묘히 찔러줌으로써 ‘쐐기’를 박는 뉘앙스로 읽히기에 충분하였다.

이후 인터넷이 어땠는지는 알다시피, 연합뉴스의 기사를 받아 쓴 기사들로 쓰나미를 이뤘다. 팩트 확인 안 된 기사를 따르는 기사로 위장된 받아쓰기들이 인터넷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이후 주요한 팩트들이 정정됐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그땐 이미 정의의 사도, 호민관이 되어버린 네티즌들이 정수근을 한참 씹고 난 이후였다.

구단이 퇴출 결정을 내린 직후 한 인터뷰에서 정수근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고 없었는데, "시끄러워진 자체가 문제가 됐다"고. 그렇다면, 이번 사건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정수근인가? 아니다. 바로 첫 번째 오보 기사를 낸 기자다.

이번 사건에서 형성된 쟁점들은 물론, 논의해 볼만한 것이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진실이 확인되기 전까지 롯데는 정수근을 보호했어야 한다고 본다. 어찌되었건 자기네 선수 아닌가. 그리고 그 선수는 시종일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었다. 정수근에 대한 KBO의 징계 해제, 무책임한 것이었다. 왜냐고? 일부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 징계 자체가 너무 과한 것이었다. 당시, 정수근의 행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사회 통념상 반드시 뉘우쳐야 할 잘못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KBO가 한 선수의 생명을 끊어도 되는 '그린라이트'를 행사할 문제는 아니었다. 정의의 사도, 네티즌 호민관에 떠밀려 애당초 과한 징계를 내려놓고, 은근슬쩍 또 다시 여론의 추이에 따라 그 징계를 스스로 해제하는 KBO의 행정은 막걸리 보안법 시대의 그것만도 못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야구선수는 공인이고 경기 전날 술 마시는 행동 자체가 파렴치하다는 도덕론이다. 한 마디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건 마치 연예인이 공인이니 스케줄 다닐 때 규정 속도지키며 다니라는 논리와 같다. 선수는 경기장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면 된다. 일반적으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자기 절제와 행동의 자율적 통제가 미덕으로 칭송되는 것이지 그런 일반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야구선수가 공인이건 아니건 간에 전혀 해당사항 없는 말씀이다. 맥주 몇 잔 마시고 다음 날 정수근이 4타수 4안타라도 때렸다면, 그 땐 또 뭐라고 할 셈인가? 맥주 안 마셨으면, 4타수 8안타 때렸을 텐데, 이럴 텐가? 술 마시면 선수 생명 짧아지는 것도 이미 성인이고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정수근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거나 그 주변의 사람들이 나설 문제이지 나와 당신이 관여할 사안은 아니다.

만약, 정수근이 다시 야구를 할 수 없다면 더 이상 롯데는 응원하지 않을 생각이다. WBC에서 100번을 우승한 들 KBO를 두둔하지도 않을 테다. 왜냐고? 난 원래 정수근 별로 안 좋아했다. 껄렁껄렁한 모습도 취향에 아니었고, 운동선수 특유의 거침을 날 것으로 노출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건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인생에서 야구를 뺏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재수, 삼수해서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 시험 전날 밤늦게까지 맥주를 마신다고 해서 퇴학시키지 않는 것과 딱 같은 이치로 말이다.

헌데, 여전히도 애당초 기사를 잘못 쓴, 아니 지어 쓴 기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수근 선수는 퇴출을 맞고 있는데, 아니 야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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