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자 한겨레 1면 기사와 조선일보 사설은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두 개의 시선을 함축해 보여준다. 두 시선은 교차하지 않는다. 지배적 시선이 피지배적 시선을 회피한다. 당분간 용산참사 해결이 난망할 것임을 시사한다.

한겨레는 ‘수사기록 빠진 재판, 변호인 조차 떠났다’는 기사를 통해 1일 오후 2시에 열린 재판 풍경을 사실대로 전달하는 데 충실했고,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오늘의 법정 모욕은 법원의 업보다’라는 날선 주장을 펼쳐 놓았다.

9월2일자 한겨레 1면 기사

조선일보는 “방청객과 피고인들이 또 법정에서 소란을 벌이는 일이 생겨났다”는 데 주목했다. 한겨레는 소란의 전 과정을 소개하는 데 충실했다. 소품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증거채집용 카메라’에 대해 조선일보는 지난달 20일 재판에서 100여 명의 방청객이 소란을 피워서 설치했는데, 또 소란이 벌어졌다며 무용지물임을 개탄했다. 한겨레는 공익근무요원 2명에게 캠코더를 들려 방청객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은 데다 천장에 CCTV를 설치해 이중감시를 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관심은 법정 소란, 곧 법정 모욕 풍조로 쏠렸다. 조선일보는 “법이 무너지고 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사회는 폭력과 무질서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회이며 세상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터로 바뀌고 있다는 표시”라며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법정 모욕 처벌 법규정을 언급하며 법원이 스스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수단마저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9월2일자 조선일보 사설

그런데 조선일보는 “법이 무너지고 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 게 한겨레 기사다.

한겨레는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불공정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며 사임계를 낸 변호인단 이야기를 짚었다. 재판부가 국선변호인을 변호인석에 앉혀 공판을 강행했고, 이 과정에 피고인이 돌아앉고, 방청객 네 명이 마스크를 쓰고 일어나고, 문정현 신부의 제안으로 100여 명의 방청객이 퇴장한 과정을 서술했다. 한겨레는 “재판부의 문서 복사.열람 명령에 대한 검찰의 완강한 거부, 피고인들의 법관기피신청과 세 차례의 기각 결정 등으로 용산참사 공판은 갈등 해결과 심판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이 무너지고 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은 방청객의 법정 소란 때문일까, 문서 복사.열람 명령을 거부한 검찰의 완강한 태도 때문일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터’를 부추기는 기사는 한겨레 1면일까 조선일보 사설일까. 이처럼 용산참사에 대한 우리 사회 지배적 시선과 피지배적 시선은 제각기 움직인다. 교차되지 않는 적대적 시선이 계속되는 한 공존은 불투명하다.

용산 변호인단 일동은 1일 “피고인들을 법정에 남겨둔 채 사임하는 우리 변호인단은 정권의 충견으로 전락한 검찰의 정정당당하지 못한 반칙과 이를 묵과하고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하려는 재판부의 비겁함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법이 허용하는 절차 내에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하여 절치부심하였지만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무력함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임의 변을 밝혔다.

사임서는 “법이 무너지고 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사연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