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당연해 보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혹은 새벽까지 기다린 사람들은, 그 많은 사람들은 기대한 것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삼성이라는 금빛 찬란한 이름 앞에 시민의 염원은 꺾이고 말았다. 또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특검에 제동에 걸린 것이라며 입을 가리고 웃기도 했다.

19일의 앵커브리핑은 그 상황을 모를 리 없는데도 한가하게 시작했다.

“총 463개의 계단, 한 발 한 발 걸어 그 위에 올라서면 머리 위엔 하늘이, 눈앞엔 아름다운 중세 거리가 펼쳐집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이유가 있었다. 뉴스룸이 추구하는 것이 ‘한 걸음 더 들어가는’ 것이지만 이날의 앵커브리핑은 의외로 한 걸음 물러나자는 의미였다. 그래서 한가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유럽 피렌체의 한 성당 이야기로 시작한 것이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463개의 계단…그리고 피렌체의 하늘'

보통은 동의하기 어려운 자세일 수 있지만 앵커브리핑이, 뉴스룸이, 손석희가 그간 해온 것들을 잘 알기에 이렇듯 급박한 순간에 한 발 물러서자는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여하튼 그 성당 이야기는 이랬다. 두 세기에 걸쳐서 설계하고 건축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어느 순간 일을 멈춰야 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설계도의 돔을 지을 기술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피렌체 사람들은 기다렸다고 한다. 무려 백 년. 설계를 바꾸지 않고 말이다. 완성된 성당에 그 돔이 꼭 필요했다는 피렌체 사람들의 합의는 신념이 되어 백 년을 지탱했고, 마침내 처음 의도한 대로의 완성된 성당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마치고서야 손석희 앵커는 다시 2017년 1월 19일의 한국으로 돌아왔다. “기업총수에게 내려진 영장은 기각되었어도 혐의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더구나 뇌물죄는 탄핵사유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지요”라고 말이다. 말을 이어갔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제 겨우 석 달이란 시간을 보냈을 뿐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기다릴 날은 아마도 그보다 짧으리란 것. 탄핵 여부는 그렇게 다가올 것입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463개의 계단…그리고 피렌체의 하늘'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상의 비정상화가 진행된 날들을 되돌리는 일. 무엇보다 정경유착의 악폐를 끊는 일이 판사 한 사람의 판단에 의해 멈춰 설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성당 하나의 완성을 기다리는 일보다 결코 더 쉬운 일도 아닙니다”라는 말을 전한다.

다시 말해서 성당 하나의 완성에도 그 많은 수고와 기다림이 필요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상식의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들과 기다려야 할 시간에 대해, 관조는 아니지만 그런 평온함의 깊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딱히 뉴스룸만이 아니라 모든 뉴스들 중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 본 사람은 물론이고 뉴스를 본 사람이라도 방송 후에 다시 찾아보게 되는 뉴스의 데일리 베스트셀러. 손석희라는 아이콘과 팩트를 넘어 지성과 감성의 통로를 지나 전달되는 뉘앙스의 향연.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외에는 없는 것들이다.

하루 종일 분해서 뭘 해도 실수만 연발하던 그 덜덜 떨리던 손발이 조금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이번 촛불항쟁에는 문학이 동행하지 못했다. 자주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때로 아니 자주 윤동주가 된다. 김수영이 된다. 이날이 또 그랬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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