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란 무엇인가.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회복해 우주와의 일치를 꿈꾸는 수행기법 아니던가. 요가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요가를 찾아보니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어 정신을 통일 ·순화시키고, 또는 초자연력을 얻고자 행하는 인도 고유의 수행법”이라고 나와 있다. 한국 버전으로 바꾸자면 아마도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어 정신을 통일ㆍ순화시키는 것을 통해 살을 빼고 건강을 유지하려는 한국의 웰빙트렌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요가학원>에는 요가를 소재로 한 작품답게 차크라니, 쿤달리니니 하는 ‘전문용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용어들이 사실 아무런 맥락이 없다. 요가학원에 모인 다섯 명의 여인들에게 쿤달리니는 마치 영화 <10억>의 주인공들이 악다구니를 쓰며 쟁취하려는 상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자기성찰? 정신 수련? 한 마디로 이런 거 없다. 쿤달리니가 열리는 것은 한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는 설정부터 이미 요가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물론, 공포영화에 대해 철학적 성찰을 기본기로 가질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거 무례한 거다. 가끔 매우 빼어난 공포영화들이 그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지만. 감독은 작품에 대해 ‘여성들의 어긋난 욕망을 판타지로 풀어낸 영화’라고 했다.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여성감독이 만들었다고 해서 여성의 욕망을 내밀하게 잘 풀어냈을 거란 기대는 갖지 않는 게 좋다. 캐릭터들은 자신이 한 행동의 근거를 찾지 못해 매 순간 방황한다. 70년대 여배우가 비밀스런 요가학원의 원장이 되는 과정이라는 미스테리와 각자의 사연을 지닌 5명의 여자들이 비밀수련을 통해 아름다움을 얻으려 한다는 두 개의 스토리는 서로 잘 섞여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개별 스토리가 설득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공포영화에 철학을 요구하진 않지만, 스토리의 짜임새와 일관성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왜냐고? 공포영화에 공포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모두 헤매고 있으니, 공포가 발생할 리 만무하다. 공포란 게 생각보다 섬세한 감정이다. 시체가 나온다고, 쿵쾅쿵쾅 시끄러운 소리를 갑자기 낸다고 해서 자연스레 공포가 생길리 없다. 여배우들이 끊임없이 질러대는 비명소리는 사실, 관객들이 지르고 싶었으리라. 영화 막바지에 효정이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줘”라고 절규했을 때, 솔직히 ‘어쩜 내 심정을 저리도 정확하게 짚어내는가’라며 살짝 감탄하고 말았다.

오히려 영화는 다른 지점을 보여줄 뻔 했다. 단지 육체의 아름다움을 넘어 존재를 거듭나게 하는 것, 정신을 새롭게 하고 새로 태어나는 것 역시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지점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중학교 교사 후배에게 들었던 말이 있다. 학원 시스템이 워낙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어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을 길렀다는 얘기였다. 학원은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들을 그때그때 전략적으로 대응해 준다. 심지어 “생각을 못하는 아이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만들어 준다”는 게 후배의 증언이었다.

상품으로서의 몸을 인식하는 것은 이제 특별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성의 몸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의 몸이 선망의 대상이 된지도 오래다. 요가학원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갈 뻔 했다. 쿤달리니가 열려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는 말은 단지 육체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에 대한 갈망이다. 새로운 존재 역시 시스템에 의한 훈육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가 맞닥뜨린 비극적인 현실 아니던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화가 바라보는 지점은 어디인지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멀기만 했다.

차라리 ‘살색 마케팅’을 더 과감하게 했더라면 ‘여배우들의 몸매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는 평이라도 받았을지 모른다. 7명의 ‘미녀 배우’ 투입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던져놓고도 그 카드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어디선가는 나올 법하다.

요가학원이 주는 진짜 공포는 이렇게 엉성한 작품이 상업영화의 제작시스템을 버젓이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상업적인 포인트가 잡히지 않는 영화가 몇 달 동안 언론지상을 오르내리며 317개관을 잡아 관객들을 유혹하는 것. 이거야 말로 한국영화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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