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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즐기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야구 장비를 구해서 직접 시합을 해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 야구를 구경하는 것이다. 야구를 구경하는 것도 몇 가지로 나뉜다. 소위 ‘X빠’라고 불리는 특정 프로 야구팀의 광팬이 되어서 그 팀만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며 보는 방법도 있고 제법 야구의 규칙이나 야구 기술에 대해 눈대중으로라도 지식을 익혀 야구 시합 자체를 즐기는 방법도 있다. 보통 시작은 열광적인 팬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종단계로 야구를 직접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야구 장비는 상당히 고가이며 야구장은 턱없이 적다. 게다가 야구 시합에 끼기 위해서는 어느 팀이건 가입해야 한다. 동네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는 정도야 한두 명도 가능하지만 제대로 된 시합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8명 이상이 필요하다. 그런 탓인지 몰라도 우리 주위에는 눈대중 야구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것이 사실이다.
초등학교 입학 이전부터 야구 관람을 했던 대표적인 ‘야빠’인 필자가 동네 야구가 아닌 유니폼 입고 심판 있는 사회인 리그 경기장에서 야구 시합을 직접 하기에 걸린 시간은 대략 30년 정도이다. 그동안 특정 팀의 광팬 노릇도 했고 야구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사이비 전문가 노릇도 했었다. 영국 작가 닉 혼비가 자신의 소설(?) ‘피버 피치’(이 책은 ‘축빠’이자 ‘아스날 빠’인 닉 혼비의 축구 사랑의 과정을 담고 있다.)에서 묘사했듯 야구 시즌이 시작되는 초봄이면 잔뜩 흥분되었다가 늦가을 야구 시즌이 끝나면 허탈감에 젖는 생활을 20년 이상 반복해 왔다. 불꽃같은 청춘의 상당 부분을 야구 구경으로 소진해버리고 30대 후반에 이르러서 초등학교 이후 거의 해 본적 없는 야구를 다시 시작한 것으로 봐서 야구에 미친놈인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필자뿐만 아니라 야구를 직접 하는 이들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아직 ‘한국 아저씨 사회체육’의 대표 종목은 조기축구이며 그것을 넘어서기에는 한계가 분명해보이지만 과거에 비해 사회인야구팀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이는 한 가지 확실한 이유와 또 한 가지 불확실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확실한 한 가지는 최근 올림픽이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에서 한국 팀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대중들의 야구에 대한 관심이 커진 탓이다. 이것은 최근 스포츠 채널에서 예전 같으면 결승전도 중계했을지 의심스러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를 예선전부터 거의 전 경기 중계하고 있는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반면 불확실한 또 한 가지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며 사회체육으로서 야구를 직접 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것인데 정말 장담하기 힘든 노릇이다. 우선 경기 침체가 수년간 지속되고 있어서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유니폼을 비롯해 이런저런 개인 장비를 위해 만만찮은 초기 투자가 필요한 사회인 야구에 참여한다는 것은 열악한 주머니 상황에서는 상당한 거금을 눈 딱 감고 질러야 하는 일이다.
또한 야구를 ‘직접 해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국내의 사회인 야구 시설은 열악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다. 도심권에는 야구장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때문에 2시간짜리 시합 한번 하기 위해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3시간이 훌쩍 넘는다. 게다가 팀 숫자에 비해 야구장이 턱없이 부족해 야간 시합을 지나 새벽 시합(?)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한적한 지방 구장을 찾아 아예 기차를 타고 원거리로 떠나는 팀들도 본 적이 있다. 이러니 우스개 소리지만 사회인 야구는 미혼자에게는 실연의 지름길이며 기혼자에게는 이혼의 지름길이란 소리가 빈말이 아니다.
이 아저씨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바로 80, 90년대의 젊은이들이다. 초기 프로야구 열기에 유년기를 적셨고 박찬호 경기에 흥분했으며 헤비메탈 음악에 열광했던 이들이다. 거칠게 말해 경제성장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대중문화 세대들인 것이다. 지난 연말 방송인 이경규가 2009년을 예측하며 ‘아저씨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이것을 어떤 세대의 복귀로 볼 수도 있지만 취향의 복귀를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 한국 아저씨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거의 없었다. 젊은 시절 무엇인가 열광하더라도 나이 먹고 사회적 신분이 생기면 소위 손윗 어른들의 문화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아저씨들은 다르다. 광의의 키덜트랄까, 어릴 적 빠져들었던 취향을 잘 버리지 않는 경향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회식 자리에서는 트로트를 흥겹게 불러 어르신들 비위를 맞추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시나위나 부활의 흘러간 록음악(?)을 목청 터기에 부르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그들에게 야구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노스탤지어를 안겨준다. 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들치고 야구공 한번 던져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다. 또한 프로야구팀 티셔츠는 야구를 좋아하건 말건 대강 한 두 개씩은 가져봤던 경험을 갖고 있다. 지역감정을 교묘하게 자극했던 프로야구 초창기의 흥행 전략 덕분인지 특히 지역에서는 그 지역 티셔츠를 한 개 정도씩 갖는 것은 또래 집단의 의무처럼 여겨졌다.(경상북도에 살았던 필자도 당연히 ‘짝퉁’ 라이온스 티셔츠를 하나 갖고 있었다.) 심지어는 프로야구 유니폼을 풀세트로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은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 자식들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등교 풍경이었다. 여하간 이런 유년 시절을 보냈으니 설사 사춘기 이후 상당한 시간 동안 야구를 잊고 지냈다 하더라도 올림픽 금메달이나 WBC결승진출 같은 야구로부터의 호명에 움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3,40대 정서의 한 축인 것이다.
어차피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고, 우리에겐 우리의 삶이 있는 것처럼 그들에겐 그들의 야구가 있는 것이고 우리에겐 우리의 야구가 있는 것이다. ‘우주 최강의 야구팀’이란 민망한 구호아래 정규리그 게임 전패를 기록 중인 팀의 우익수 경쟁자에겐 1승과 주전 확보가 무엇보다 급선무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도 땀 삐질 거리며 달릴 뿐이다. 회사니 가정이니 잠시 잊고 미친 듯이 달려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