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박양지 기자] #울산에 사는 대학생 김모(24, 여) 씨의 스마트폰 메모에는 예쁘고 세련된 카페의 상호나, 해당 카페에 대한 블로그 링크 등이 가득 메모돼 있다. 김 씨는 “대학생활로 지치고 힘들 때 이렇게 예쁘게 인테리어도 돼 있고 음료도 독특한 카페에 가서 ‘힐링’을 하고 온다”고 했다. 마치 여행을 온 듯한 기분으로 음료를 마시며 사진도 실컷 찍고, 인스타그램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며 친구들과 공유하는 취미도 누린다고.

김 씨는 “어디 멀리 여행을 가는 건 지금 형편에 엄두도 못 낸다. 그렇다고 돈 벌고 공부하는 기계처럼 사는 건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다”며 “비싼 카페에 친구들과 같이 가면 만 원 이상도 쓰고 올 때가 있긴 하지만, 큰 돈 나가는 데가 없으니 그 정도 ‘지름’은 스트레스 해소하는 값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에서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하며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28, 여) 씨는 남편과 함께 착용하거나 사용할 ‘커플템’을 사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일탈을 누린다.

이 씨는 유명 스포츠브랜드의 운동화나 후드티, 핸드폰 케이스, 팔찌 등을 남편과 함께 종종 산다고 했다. 그는 "악착같이 안 쓰고 모으기만 하든, 이렇게 소소하게 '지르면서' 생활하든 어차피 큰 돈 모으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라며 "아직까지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맞벌이로 종일 고생하는데 가끔 한 번씩은 이렇게 ‘지를 때’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게 남편과 내 생각“이라고 전했다.

#대학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박모(26, 남) 씨는 만년필이나 잉크, 고급 노트 등을 사는 것으로 자신에게 일종의 ‘보상’을 준다. 평소 다른 큰 규모의 지출을 하지 않는 대신, 일정액을 저축하고 남는 돈에서 ‘지름신을 영접’한다고 했다. 그는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크게 비싸지 않은 선에서 사고 싶은 것을 살 때 느끼는 쾌감과 뿌듯함도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이 '지름신을 영접'했을 때 종종 쓰이는 이미지. 만화의 한 장면에서 대사를 바꿨다.

젊은 층에서 ‘지름’이라는 이름의 소비 패턴이 형성된 지 오래다. 지출을 최대한 줄여 특별한 날이나 먼 장래에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비교적 고가의 커피나 의류, 화장품, 사치품 등을 종종 사며 즐거움을 누리는 것.

이로 인해 ‘고가 정책’을 펼치는 카페가 도리어 젊은 층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실제 울산 남구의 한 카페는 음료 대부분의 가격이 5천 원 선을 웃돌고, 조각 케익 한 개를 같이 주문할 경우 한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 값이 1만 원을 훌쩍 넘지만 거의 매일 손님이 만원을 이룬다. 손님은 대부분 카페를 ‘즐기며’ 사진을 찍기 위해 온 2~30대다.

울산 무거동의 한 카페는 고가정책을 펼쳐, 독특한 카페 인테리어와 해당 가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화 음료 등을 전략으로 했다. 6천 원 이하의 음료가 아예 없음에도 주말에는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이 같은 소비 형태는 장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힘든 젊은 층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말이면 독특한 인테리어와 맛으로 유명한 ‘잇 카페(it cafe)’들을 자주 찾는다는 회사원 박모 씨(27, 여)는 “사실 과거 기성세대 때처럼 악착같이 모아서 노후에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는 2, 30대에게 사라진 지 오래 아니냐”며 “미래는 안 보이고, 현실은 답답하고, 잠깐이라도 내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된 게 아닐까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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