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정권교체를 열망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 답한 비율이 85%에 육박한다. 30, 40대로 좁히면 열 중 아홉이 정권교체를 전망했다. 가히 '묻지마 정권교체'라 할 만하다. 2개월을 넘겨 이어진 광장의 열기를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집권당이던 새누리당이 괴멸적 타격을 입은 상황을 보더라도 보수정권의 연장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보수의 재건을 내 걸고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바른정당이 있지만 대선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핵심 주체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여전히 '좌파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색깔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파괴력을 가진 대선주자도 없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 이제는 어떤 정권교체인가를 생각할 때다. 차기 정부의 임무가 그만큼 막중하다. 차기정부는 비단 보수정권 10년의 실정을 바로 잡아야할 뿐아니라 수 십 년간 누적되어온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세월호, 역사교과서, 한일위안부협정, 개성공단 중단 등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광장은 이미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광장을 가득채운 '이게 나라인가'라는 탄식은 뒤집어 말하면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강한 요구다. 이 열망을 실현할 크고 근본적인 개혁이 차기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돌이켜보면 수평적 정권교체로 시작된 지난 10년의 민주정부의 성과는 눈부셨다. 애써 폄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의의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았다.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불평등 문제는 민주정부가 등장한 98년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참여정부 시절 제정한 비정규직 관련법은 노동자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임금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기득권 타파의 핵심 대상이 된 재벌 그리고 재벌중심의 경제체제는 박정희 정권의 유산이지만 정치권력의 교체와 무관하게 유지되었다. 참여정부는 대표적 재벌인 삼성과 유착관계를 의심받을 정도로 재벌 친화적이었다. 정치검찰과 관료의 지위와 영향력도 한결같았다. 민주정부 10년을 이끌었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자기검열 때문에 또는 자신감 부족으로 더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것을 누구보다 아쉬워하고 후회했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차기 정권이 끝날 때 즈음이면 또 다시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어떤 정권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아쉬움의 크기가 성과를 덮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대선후보를 비롯한 정권교체 주도세력의 원칙과 철학 그리고 행태가 중요하다. 그들이 차기정부의 성패를 상당부분 결정하기 때문이다.

2012년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완벽한 사기로 드러났지만 대선에서는 야당의 프레임을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번 대선에서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불평등 해소는 거의 모든 대선 주자들의 공동의제가 될 전망이다. 최저임금인상,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구체적인 정책도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다. 불평등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복지를 사회안전망 정도로 간주하는 보수적 접근처럼 불평등이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므로 세금과 복지로 완화해야할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키케로는 공화주의를 '미덕을 갖춘 시민이 공익을 위해 사익을 양보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를 계승한 마키아벨리는 불평등이 팽배하면 타자에 대한 지배와 억압이 심화되고 사회규범과 질서가 붕괴됨과 동시에 부패로 그 사회는 몰락하게 된다고 보았다. 권력과 부를 더 많이 소유한 이들이 경쟁의 공정한 룰이나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될 정도로 힘이 세면 가난하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능력이 있어도 성공할 수 없다. 당연히 누구도 공동체와 공익을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며, 사회에 대한 주인의식과 책임의식도 가질 수없다. 공공선에 대한 의식 위에 세워지는 공익적 질서도 소멸한다. 불평등이 부패를 낳고 그 부패가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한다는 실증적 연구도 있다.(유종성,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 동아시아) 우리 헌법이 명시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의가 옳다면 불평등은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국가공동체를 위협하는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우리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역습을 노린다. 정권교체 주도세력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인식이 조금만 무디면 여지없이 파고들어 포획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을 준비하면서 분야별 정책을 공부할 때의 일이다. 고 김기원 교수가 노 후보와 재벌정책에 대한 토론을 마치고 필자에게 넌지시 말하기를 후보가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가 약해 보인다고 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안다. 참여정부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모욕적 비난을 받았다. 재벌, 검찰, 관료 등 우리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 세력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강한 단절의지가 없다면 정권교체의 의의는 크게 줄어든다.

누가 승리하든 단독집권의 경우 여소야대 상황이 발생한다. 안정적 국정운영과 입법을 통한 개혁이 매우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 정당이 개혁을 위한 공동정부를 꾸리는 것이 한 가지 방안이다. 승자독식의 정치는 바람직한 전통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심지어 집권당에 속한 일부 세력까지 국정에서 철저히 배제했고, 스스로 무너졌다. 같은 새누리당이었지만 남경필 경기지사의 연정실험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다당체제 아래서 공동정부를 통한 협치는 한국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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