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쳇말로 깊은 ‘빡침’이 절절히 전해졌다. “아니면 평소에도 잘 들르든가” 반말인 듯 반말 아닌 듯 애매한 말로 1월 16일의 앵커브리핑을 끝마친 손석희 앵커 이야기다. 사실 그랬다. 선거철만 되면, 혹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면 늘 보이는 정치인들의 낯선 행동들. 외신기자가 한 말은 그 빡침에 수치심까지 더해준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만 시장에 가는 정치권. 그들은 유권자를 유아 다루듯 한다"

같은 날 양대 포털 검색어를 종일 차지하고 있던 단어는 ‘반기문 턱받이’였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은 귀국 첫날부터 소위 ‘민생행보’를 하겠다며 웃지 못할 촌극과 뒷말들을 남겼다. 공항에 의전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든지 기차표 자동판매기에 만원권 두 장을 억지로 밀어 넣는 장면 등은 그러려니 넘길 수도 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또 붐빌 그곳…"평소에도 잘 들르든가"

그러나 이어진 무리한 민생행보는 잡음과 구설수만 쌓이고 있다. AI방역체험을 한다면서 약품을 분사하는 모습을 찍는 장면은 이랬다. 본인은 방역복을 입었지만 정작 그를 둘러싼 취재진은 평상복 그대로였다. 취재진의 무책임함을 탓해야 할까? 물론 그렇지만 취재진의 평상복은 반 총장이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는 반증이었다. 말이 체험이지 그냥 사진찍기였다는 의심만 키울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반 총장의 민생행보에 걸림돌이 된 바로 턱받이 사건. 음성 꽃동네를 찾은 반 총장 내외가 한 노인에게 음식을 떠먹이는 따뜻한 장면을 연출하려고 한 의도까지는 알고도 속아준다지만, 정작 턱받이는 해야 할 환자가 아니라 떠먹여주는 반 총장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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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해하자고 들면 다른 일정이 많은데 혹시라도 옷에 튀면 곤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10분 머물기 위해서 화장실을 뜯어고친 어떤 대통령과 왠지 모습이 겹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쩌면 반 총장이 운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10년을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국내 활동사진이 너무 없다는 것이 향후 선거 홍보에 불리한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급하게 너무 많은 것을 보충하려는 의욕이 앞선 것이 문제가 됐을 수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이 10년 만에 처음 온 것도 아니고, 그간 이런저런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는 이런저런 문제로 발길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때라도 좀 낮은 행보를 했더라면 지금의 잡음은 다소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뭐든 하지 않던 것을 급히 서둘면 동티가 나는 법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반 총장만의 일일까? 그렇지 않다. 앞서 외신기자의 말처럼 선거철만 되면 각종 전통시장이 붐빈다. 사실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대형마트가 아닌 시장을 찾는 이유는 별도로 따져봐야겠지만 어쨌든 시장을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찾는 정치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또 붐빌 그곳…"평소에도 잘 들르든가"

JTBC <뉴스룸>은 이날 앵커브리핑과 비하인드 뉴스를 통해 이 같은 정치인들의 보여주기 행동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그게 맞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이런 속이 들여다보이는 눈속임을 ‘민생행보’라고 포장해서는 안 된다. 결론은 다시 언론이다. 정치인들의 이런 얄팍한 행동에 맞장구를 쳐주니 하는 것이다. 기사가 운전해주는 고급차를 타던 사람이 하루 전철을 타본다고 서민들의 삶을 알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일정표를 받을 때부터 이런 의미 없는 취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면 과연 카메라 없이, 기자 없이 시장으로, 낮은 곳으로 갈 정치인이 있을까? 우리는 1월 1일부터 참 볼썽사나운 장면을 봐야만 했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불법이 의심되는 간담회에 공손히 두 손 모은 기자들의 모습. 그 장면은 얼마 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를 상대로 언성을 높이는 기자의 모습과 비교되었고, 기자도 아닌 국민이 부끄러워해야 했다.

진성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선거철의 형식적인 풍경의 절반은 언론 책임이다. 그게 그림이 된다고 맞장구칠 것이 아니라 쓴소리를 해야 언론이다. 또한 박수부대 노릇도 그만 둬야 한다. 정치의 탈선을 언론이 부추겨서는 안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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