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언론사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마치 각 후보들이 여론조사를 위해 선거를 치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우리의 언론이 후보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뒤로한 채 여론조사 결과로 ‘땜질’하고 있는 보도행태를 개탄한다. 특히 10%대의 낮은 응답률과 표본 설정 등을 두고 신뢰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더욱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 방법을 조금만 살펴보면 결과를 해석하고 인용할 때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여론 조사는 전체 인구 중에서 매우 작은 수만을 추출해 생각을 물어 본 것일 뿐이다. 조사 결과는 순전히 표본들의 생각이다. 물론 통계학적으로는 표본 조사만으로도 전체의 생각을 가늠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의 영역일 뿐이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는 표본 추출 방식과 조사 시기는 물론 결과의 표본오차와 응답률 등을 밝혀야 한다. 이 가운데 표본오차와 응답률 등은 조사 결과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변수들이다. 즉 이 변수가 어떤 값을 취하느냐에 따라 결과를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 보도시 표본을 토대로 한 "추정"일 뿐이라는 점을 빼먹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보도는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는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마치 여론조사 결과를 투표 결과처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정책 검증 보도 실종과 경마식 보도 되풀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권자는 후보자를 선택하는 사람이지 후보 간의 경쟁을 지켜보며 쾌감을 즐기는 경기장의 관람자가 아니다.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교묘히 우리 유권자를 선거 경기가 펼쳐지는 운동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선거와 운동 경기는 분명히 다르다. 운동 경기의 승패는 선수의 경기 능력에 좌우되지만 선거 결과는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언론은 명심해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 보도에서 빠질 수는 없다. 그러나 조사 결과의 불완전함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이를 진실인 양 공표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유권자의 건전한 상식과 판단을 해칠 수 있다. 특히 최근의 여론조사 응답률은 불과 10%대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표본이 1000명일 때 응답률이 20%라면 겨우 200명만이 조사에 응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200명의 응답 결과를 놓고 얼마나 자신 있게 보도 근거로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과학적 근거와 방법을 제시하며 결과 예측을 자신하고 있지만 실제로 응답률이 10%대에 머물고 있다면 신뢰도는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신뢰도가 낮은 자료를 인용하고 있음을 알리지 않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의도적인 사기극에 가깝다.

대선미디어연대는 이런 비이성적 보도 경쟁 속에서도 일부 언론사들이 뒤늦게나마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언론 본연의 신중함과 진실 보도에 한발 다가서려는 이런 노력을 우리는 높이 평가한다. 정책검증을 하라는 요구에는 구차한 변명과 어려움을 호소하며 외면하는 언론사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진실처럼 보도하는 것은 여론 조작에 가담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언론사들은 당장 여론조사의 망령에서 벗어나 후보 자질과 정책 검증이라는 기본에 충실하길 바란다.

2007년 11월 14일
대선미디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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