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사장 투하와 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심의로 지난해 내내 시민사회의 집중 포화를 맞았던 YTN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하지만 정부·여당으로선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던 것일까?

8월, 공교롭게도 YTN과 방통심의위의 수장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바뀌었다. 260여일간의 ‘낙하산 반대 투쟁’으로 지난해 최고의 화제 인물이었던 구본홍 사장은 3일 사퇴의사를 밝혔으며,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도 7월 31일자로 사퇴했다. 이 둘은 각각 ‘선후배간 화합’ ‘내부 불협화음’을 사퇴의 이유로 내걸고 있지만, ‘진짜 배경’에는 ‘청와대’가 있다는 것이 언론계의 지배적 시각이다.

▲ 이진강 방통심의위원장(왼쪽)과 배석규 YTN 사장 직무대행(오른쪽)

구 전 사장의 경우 YTN노조의 ‘출근저지 투쟁’ 탓에 5개월여간 출근도 못하는 등 무능한 조직운영을 보였으며, 박명진 전 위원장은 내부 불협화음 외에도 ‘정치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정부로부터 낙제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무능함’을 이유로 교체됐기 때문일까. 배석규 YTN사장 직무대행과 이진강 신임 방통심의위원장은 선임 이후 각종 조치를 통해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 “바꿔, 바꿔!”: 부위원장 교체…보도국장·정부비판앵커 교체

8월 7일 취임한 이진강 신임 방통심의위원장은 대한변협 회장 시절 BBK특검, 미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조중동 불매운동 등의 사안과 관련해 이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MB맨’으로 꼽히던 인물. 이 신임 위원장은 ‘여여갈등’의 핵심 인물이었던 손태규 전 부위원장이 자리를 유지하길 원했음에도 다수의 여당 추천 위원들과 함께 ‘신임 부위원장 선출’을 밀어부친 것으로 알려졌다.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이는 대통령 몫으로 추천된 전용진 위원. 전반적으로 ‘무난한’ 인물이지만 자신을 추천한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심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 위원은 MBC <100분토론> ‘시청자 의견 조작’ 건과 관련해 심의위원들이 가장 낮은 수준의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로 합의할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중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주장하기도 했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이진강 체제’에 대해 “정치심의를 위해 한층 강력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것이다. 정치적 사안에 있어서 심의가 지연될 때 청와대의 입맛에 맞게 빨리 처리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YTN의 경우 “선후배간의 화합을 위해 본인이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구 전 사장의 말과는 달리 구 전 사장 사퇴 이후 ‘선후배간 화합’은 더욱 멀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사태의 중심에는 구 전 사장 시절 전무로 재직하며, ‘강경파’로 꼽히던 배석규 YTN 사장 직무대행이 있다. 배석규 직대는 10일 보도국원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돼 임기가 보장된 보도국장을 일방적으로 교체하고, 정부 비판적 코멘트를 한 앵커들을 타 부서로 발령내는 등 대대적인 ‘물갈이’를 진행했다. 정부 비판적인 <돌발영상> 임장혁 팀장도 경영기획실로 대기발령됐다.

이 과정에서 단체협약과 관련 규정에 명시된 ‘보도국장 3배수 추천제’(노조가 보도국장 선거를 주관하며,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 중 상위 득표자 3명을 사장에게 추천해 사장이 이중 한명을 신임 보도국장으로 임명하는 것)는 묵살당했다. 신임 보도국장이 된 김백 경영기획실장 역시 노조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온 인물이다.

▲ 배석규 전무의 인사 조치와 관련해, YTN노조가 10일 저녁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7층 대회의실에서 대의원대회를 열고 있다. ⓒYTN노조

▷ “아무것도 우릴 막을 순 없어”?: 특위 무력화…명예훼손 소송 등 준비

현재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 안건의 경우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분과별 특별위원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여당 추천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전체회의에 즉각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6일 전체회의에서 관련 안건이 논의될 예정이다. 방통심의위 심의기획팀 관계자는 “특위 위원 숫자를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서 정한 특별위원회의 기능(자문 역할)에 맞게 역할에 대한 검토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까지 방송제1분과특위위원을 지낸 바 있는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자율성, 독립성이 핵심인 특위 기능을 축소하고 즉각적으로 심의에 들어가는 것은 (6:3구조에서) 다수당을 위한 정치검열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합의’로서의 방송심의가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이진강 위원장이 특위 기능 축소의 이유로 ‘방송심의 지연’을 내건 것에 대해 이 교수는 “시간적 효율성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심의의 공정성”이라고 반박했다.

강혜란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방통심의위는 민간자율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6:3 구도로 경직된 정치심의를 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완충역할을 해왔던 특위마저 무력화시킨다면 대통령 직속인 방통위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YTN의 경우 상황은 좀더 복잡하다. 배석규 직대의 잇단 강경행보에 YTN노조가 불신임안 투표를 진행한 결과 불신임 비율이 93%에 이르자 사측은 불신임 투표에 대해 “회사의 질서를 훼손하고 생존하는 데 있어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며 “투표에 대해 조사하고 있으며, 투표를 개표한 사람들은 회사 소속이 아닌 해직자들이기 때문에 이는 사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측은 명예훼손 등을 입증할 여러 증거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불신임’ 건은 향후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질 양상이다.

강혜란 여성민우회 소장은 “구본홍 사장은 우유부단한 모습때문에 교체됐고, 방통심의위의 경우 MBC <100분토론> ‘시청자 의견 조작’ 건에서 느슨한 제재를 내린 것이 위원장 교체를 촉발한 계기라는 평가가 많다”며 “이 정부가 이제는 언론장악에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KBS의 경우 ‘정리됐다’고 판단할 것이고, 이제는 미진했던 곳들을 다시 정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언론장악에 대한 현 정부의 의지나 욕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정당성의 위기 속에서 믿을 것은 ‘언론장악’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늦어도 2011년 4월 총선에서 (장악된 언론을) 적극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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