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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조 활동 5년, 설렘 성과 회의 무력감 그리고 해답 찾기[2주에 한번, 이주이야기] 2017년 몸과 마음이 건강한 활동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1)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 승인 2017.01.14 11:09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이번 주에는 이주노동운동이나 이주노동자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가까운 지인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활동이 지치고 더 이상 새로움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공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이 글이 해결책은 될 수 없겠지만 지난 5년 동안 이주노조 활동을 지속해오기 위한 활동가 나름의 자구책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다. 그간 이주노조 활동을 하면서 해왔던 고민들을 정리하다보니 내용이 길어지게 되어 부득이하게 두 차례로 나누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2012년 5월, 이주노조 사무실로 첫 출근한 그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꿈에만 그리던 이주노동조합 상근자로 출근하게 되어 새로운 명함도 받고, 뿌듯한 마음에 한동안은 그 명함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많이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출근의 설렘도 잠시, 곧이어 터진 2012년 사업장변경지침 투쟁으로 인해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실무와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은 학생 때 상상하던 그 이상이라는 것을 몸으로 겪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며 상담을 하고, 노조가입원서를 건네거나 같이 노동부에 출석조사를 나가거나 보호소에서 면회 등을 하고나면 몸이 녹초가 되곤 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땅에 와서 직면하는 각종 문제들-임금체불, 퇴직금, 폭행, 성폭력, 교통사고, 부당해고, 긴급한 병원치료비 등등-은 매뉴얼을 찾아보더라도 case by case일 수밖에 없어서 직접 부딪혀보지 않고는 도저히 해결책을 알기 어려웠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서 다른 노동조합 활동가, 변호사, 노무사, 센터활동가, 이주 공동체 활동가 등을 알아가게 되었다. 또한 이주아동, 이주여성, 난민, 동포 등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해서도 ○○○네트워크, 대책회의, 연대체란 이름으로 공동으로 대응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역은 조금씩 넓어져 인권운동, 성소수자운동, 장애운동 등 사회적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 및 활동가들과의 연대까지 이어졌다.

농성장 지지 방문

적어도 1년에 이주메이데이, 고용허가제 폐지 집회,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등 수백여 명 규모의 큰 집회를 몇 차례 치르고 크고 작은 기자회견과 캠페인, 각종 회의와 교육 등을 참석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해가 지나가곤 했다. 그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도 졸업하고 나이 앞자리도 2에서 3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15년 8월, 이주노동조합이 10년 만에 합법노조 지위를 쟁취하였다. 합법화 과정에서 여러 쟁점이 있었고, 한 달간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치르는 과정에서 정말 이 투쟁이 승리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함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보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투쟁하기 위한 디딤돌로서 합법화된 이주노조가 필요하다는 데에 이주노조 지도부를 비롯한 조합원들의 의견이 절대적이었고, 그 힘으로 2015년 8월 20일 고용노동부에서 이주노조 등록필증이 발급되었다. 한동안은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가 쏟아졌었다. 당시에는 나름 합법화를 쟁취했다는 자부심으로 전국적인 이주노동조합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도 있었고,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 우후죽순으로 조합원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내 기대만큼 녹록지 않았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 분명히 예전보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관심을 보였고, 조합원이 지속적으로 늘었으며, 특히 현장에서의 교육이나 집회 등을 진행할 때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분위기에서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의 역량이나 현황 등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 글에서 이주노조의 쟁점들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주노조 상근을 시작하면서 이주노조 합법화를 쟁취할 때까지 고군분투했던 그때에 비해, 합법화 이후 쳇바퀴 돌듯 기존 활동을 지속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전망을 만들지 못했다는 무력감은 본인의 활동을 점점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주노조 운동이 전체 노동운동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함께 만들어내기 위한 이주노동자 당사자 주체들이 양성되고 있는가? 그러한 주체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현재 노동조합의 재정이나 비자문제 등은 어떻게 해결이 가능할까?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직면하게 되는 질문에서 그 답을 찾기란 무척이나 막막했다. 

처음에는 나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전국에 있는 이주활동가 선배들을 만나서 술도 한 잔 기울이며 고민을 나누기도 했고, 다른 이주운동 사례를 공부하면서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노력을 기울인 적도 있었다. 그러한 노력도 잠시, 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산적해 있었고 실무에 치어서 쳇바퀴 돌듯 일을 하다보면 중장기전망이니 하는 것들은 너무 멀고 먼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어느 샌가부터 내 마음속에는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고민이 무럭무럭 커져가기 시작했다. 당시 SNS에도 이와 같은 심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었다. “활동이 재미없다” 

그리고 2016년 5월 1일 이주메이데이 집회를 마친 바로 다음날, 5년 넘게 했던 운동으로부터 도망치듯이 저 멀리 뉴욕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다음 기고글에서는 뉴욕에서의 2주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개인 심리상담을 시작하고 필리핀, 네팔에 가서 이주노동지들을 만나면서 이제 누구를 만나더라도 “활동이 재미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과정을 소상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끝으로 활동하며 지치고 힘들 때마다 즐겨 듣던 노래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 박근혜 퇴진 10차 범국민행동에서 꽃다지가 부른 “당부”이다.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pjww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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