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x 효과’를 아십니까? 루퍼트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 그룹의 방송사인 Fox는 9.11 폭탄 사건이 터지자 미국 저널리즘을 주도했다. 연일 국수적 국가주의, 애국심, 강력한 미국, 성조기를 앞세워 응징을 주장했다. 네오콘의 든든한 친구를 자임했다. 덕분에 미국은 제조된 애국심이 넘쳤고, 중동에서의 전쟁에 기꺼이 참여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타 방송사는 Fox의 선정성을 외면했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Fox의 뉴스에 열광했다. 경쟁 네트웍들은 Fox식의 뉴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Fox 효과’다.

머독, 비즈니스를 위한 정치, 정치를 통한 미디어 비즈니스 만들기

Fox의 힘은 곧 거대 복합 미디어기업의 힘이었다. Fox 방송의 실질적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은 52개국에서 800여종의 미디어 사업을 펴고 있다. 신문 저널리즘의 연성화가 돈을 버는 재주였다. 번 돈으로 방송에 투자해 신문방송겸영 체제를 구축해갔다. 그를 바탕으로 영화, 잡지, 출판으로 영역을 넓혔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구단(LA 다저스) 등 타 산업에까지 손을 댔다. 복합 미디어 산업의 힘을 기반으로 정치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미디어 비즈니스를 위해 정치를 하고, 정치를 통해 더더욱 미디어 비즈니스를 튼실하게 만들어가는 괴물체로 바뀌어가고 있다.

▲ 한겨레 2008년 8월 16일자 30면.
Fox 텔레비전, 머독의 미디어를 통한 정치 관여, 정치를 통한 미디어 비즈니스의 확장은 이탈리아에서 진화된 형태로 복습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20억 달러의 자산가다. 방송사, 신문사, 출판사, 잡지, 영화배급사, 광고대행사, 보험사, 은행, 그리고 AC 밀란 축구단 등 모든 것을 가진 미디어 재벌이다. 미디어 경영 수완을 발휘해 총리에 취임하자 공영방송 RAI의 이사진을 갈아치웠다. 그 자리에 정치적 심복을 심어 공영방송 관련법들을 바꾸고 정부가 관여할 여지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가 지닌 타 매체들의 지원 사격을 동원해 여론을 잠재우는 일도 잊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요 매체, 공영방송까지 먹어치운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자유도 세계 77위라는 성적표를 이탈리아에 선사했다.

부동산 업자였던 베를루스코니는 경제 살리기 캠페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러나 그가 총리에 있는 동안 경제성장률은 1%대에 머물렀다. 과도한 친미 정책으로 유럽 주변국으로부터 힐난을 한 몸에 받았다. 국제회의에서의 막말로 세계적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전후 최장수 총리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 그의 집안이 지닌 미디어와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공영방송을 빼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베를루스코니가 연출한 대자본, 정치, 미디어의 블록이 그의 정치 생명을 뒷받침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와 법 개정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를 인수하자 미국 시민사회, 언론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디어 권력에 대한 견제가 그 어떤 문제보다 시급함을 인식한 탓이다. 대통령 선출에까지 관여하려는 거대 언론을 지켜본 후의 자각일 수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베를루스코니 정권이라는 미디어 괴물권력에 대한 자각이 일고 있다. 베페 그릴로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베를루스코니 풍자로 전국적 인기를 끌고 있다. 만담을 통해 언론이 해내지 못하는 역할을 해낸다. 언로가 막힌 이탈리아에서 그가 누리는 폭발적 인기는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저항의 척도로 보인다.

미국이나 이탈리아처럼 미디어와 정치의 접속, 그를 통한 권력행사를 지켜본 후의 반응과는 달리 미디어가 사회를 좌우한 역사가 너무 깊어 저항조차 없는 곳도 있다. 이웃한 일본이 그렇다. 전후 일본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신문사에 넘기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신문사야 말로 전쟁 후에도 일본 보수 세력의 파트너가 될 거라 믿은 정치권은 새로운 매체인 방송을 그에 넘겨주었다. 그로부터 60 여 년이 지났다. 신문방송 겸영체제는 60 여 년 동안 삼각동맹이라고 할 자민당 중심의 보수정치세력, 재벌, 관료를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해왔다. 일본 보수 동맹의 축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주변국가에 반성하지 않는 모습, 분쟁을 자극하는 일들, 망언들, 우경화를 거듭하며 반 평화적 행태를 반복하는 일본의 중심에 긴 역사의 미디어 체제가 버티고 있다.

일본의 신문방송 겸영은 보수정치, 재벌, 관료를 이어주는 접착제

일본 정부가 텔레비전을 신문사에 분양해줄 당시 책임 정치가는 타나카 가쿠에이였다. 그는 중의원에 16번 당선되고, 두 번에 걸쳐 수상을 역임했다. 뇌물수수로 체포까지 되었지만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를 전후 최고의 정치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의 뇌물수수 정보를 알고도 심층으로 파고들지 않았던 신문과 방송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체념인지 좌절인지 알 길은 없으나 일본 사회는 그런 미디어 체계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 미디어 체제가 장기 지속되어 사회 전반이 무뎌진 탓이다. 정치, 기업, 관료, 언론, 대중의 침묵이 한데 어우러진 복잡계의 권력 사회를 지닌 일본은 그런 점에서 한국의 수구 세력이 꿈꾸는 미래다.

미디어 관련법은 무서운 미래를 잉태하고 있다. 머독식, 베를루스코니식, 일본식 괴물과 유사한 그러나 한국적인 괴물체의 탄생을 앞당기려는 세력들이 합종연횡으로 부지런을 떨고 있다. 공공성을 부정하고, 정의를 내팽개치고, 평화에 눈감는 사회로 이끌려는 작업이다. 국가의 근간을 모두 내팽개치면서까지 미디어 관련법을 성사시키려 하는 의지를 대하면서 사익추구를 위해 국가경영을 하는 집단들도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을 퍼뜩 갖게 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미디어 법 논란에서 한시라도 한 눈 팔지 말고 감시하고,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자기 다짐을 한 것도 그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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