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수요일 EBS <열린극장>의 한장면이다.

"메리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다흰이에요. 윤다흰. 선물감사합니다. 딸 다흰 올림"

여섯살 딸아이가 크리스마스 다음날 이런 편지를 엄마에게 건냈다. 산타할아버지에게 전해달란다. 선물을 받고 감사 인사를 할줄 알다니, 역시 우리가 딸하나는 잘 키웠다고 감격하던 부모는 마지막 한줄을 읽고 고민에 빠진다. 딸이라니, 지금 이 녀석이 우리를 놀리는 게 아닐까?.

부부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다흰이의 순수함도 지켜주고, 본심도 알아낼 수 있는 전략이다. 루돌프 사슴코 명의로 답장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한 편지는 계속 됐다. 하지만, 궁금증은 더 쌓였다. 다흰이는 루돌프에게 쓴 편지에 엄마랑 아빠가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다흰이도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눈치지만 루돌프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부모는 아무래도 아이가 산타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냥 엄마와 아빠가 다흰이에게 "산타할아버지를 믿어?"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부부는 애써 그 길을 돌아갔다. 아마도 아직은 아이가 정말 '아이'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한단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품에서 나가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다흰이가 알고 있다는 그 비밀은 무엇일까? 결론은 EBS 홈페이지에서 <열린극장> '산타의 비밀' 편을 보면 알 수 있다. 무료다.

11분짜리 단편영화지만 이야기가 오밀조밀 재미났다. 누구나 한번씩 겪었던 일이라 좋게 해석하면 공감이 쉽고, 자칫 식상할 수도 있는 줄거리인데 그 경계를 무난히 잘 피해간듯하다.

놀랍게도 계원예고 김송준 감독의 첫작품이다. 계원예고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찍었다. 방송이 끝나고 이어져 나오는 인터뷰에서 김감독은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동심을 찾고, 순수했던 그 시절을 한번쯤은 회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열린극장>은 청소년들이 만든 영상물만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작품들에서 꿈을 일찍부터 키우고 있는 청소년 감독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확실히 텍스트가 아니라 영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책에서 감수성을 자극받으며 자랐던 세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좋은 책을 권하는만큼 좋은 영상물을 많이 보도록 하는 것도 어른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어야 사고력도 길러지고 창의력도 생긴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지만 한계가 있다. 그런 효과는 '좋은 영상물'을 많이 접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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