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한 검찰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정 전 사장에게 업무상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검찰의 논리는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사 논리 수긍할 수 없어"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이규진)는 18일 선고에 앞서 이례적으로 "순전히 법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며 검찰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 서울 서초구 법원
법원은 '추후 세무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이 매우 유력함에도 불구하고 정 전 사장이 연임을 목적으로 KBS측에 불리한 조정안을 받아들였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KBS가 진행중인 조세소송 16건 중 9건을 승소하고, 7건을 패소한 상황에서 어느 일방이 우세하다고 볼 수 없다"며 "특정 소송의 결과를 어느 누구도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고된 하급심 판결이 그 내용 그대로 상급심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확실하게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법원은 "조정 시도의 시점(2004년)은 경영부실 책임이나 이에 따른 노조의 경영진 퇴진 압박(2005년)에 훨씬 앞서는 것일 뿐 아니라 조정의 목적 역시 소송의 장기화 내지 분쟁의 계속·반복에 따른 KBS의 부담을 감쇄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검찰 논리는 수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원은 "조정안에는 합리성이 결여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검찰은 무엇이 가장 KBS에 유리하면서도 합리적인 조정안인지 구체적으로 내용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2008년 10월 변호인들이 이에 관한 석명 신청을 하자 검사는 11월 '조정은 양 당사자의 합의로 이뤄지는 것이므로 이를 측정하기는 사실상 곤란하고 공판과정에서 입증을 통해 밝혀질 문제'라는 답변만 했을 뿐이다. 오히려 공사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과세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과세관청과의 협의 및 과세관청에 대한 질의 등 의견조율을 거쳤고, 1년 이상의 내부 검토와 외부 법률전문기관에의 자문 의뢰 등을 통해 조정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판결에 대해 변호인측 김기중 변호사는 "검찰로서는 항소하지 않아야할 정도로 판결문에서 기소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전적으로 동의하며, 조목조목 반박해준 재판부에 감사하다"며 "법리적으로 너무나 터무니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소했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목적은 '유죄' 아닌 정연주 축출"

법원 판결에 대해 KBS내부와 언론계에서는 검찰이 유죄 판결이 아닌, 정연주 전 KBS사장의 축출을 위해 기소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무죄 선고 직후 카메라 앞에 선 정연주 전 KBS 사장. 정 전 사장은 판결과 관련해 “변호인에게 물어보라”며 말을 아꼈다. ⓒ곽상아
정연우 민언련 공동대표는 "정연주 사건 뿐만 아니라 신태섭, 강성철 사건 등 법원이 일련의 판결을 통해 정권의 KBS장악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것"이라며 "검찰은 애당초 유죄 판결을 노린 게 아니라 정 전 사장을 낙인찍고 여론재판을 함으로써 쫓아내려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김현석 전 KBS사원행동 대변인도 "검찰은 기소 자체가 목적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의 조정권고를 KBS 측에서 받아들인 것을 가지고 '배임'이라고 하면, 법원이 배임의 배후라는 것이냐"라며 "이명박 정부의 KBS장악이 최소한의 합리성도 없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기소의 무리함을 모르진 않았을 검찰이 정 사장 축출을 위해 무리하게 밀어부쳤다. 검찰과 현 정권의 만행을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할 것이고, 이는 출범 이후 반민주성을 수도없이 보여줬던 이명박 정권에게 또하나의 부담이 될 것"이라며 "불법적 과정을 거쳐 선임된 이병순 사장은 KBS사장으로서의 정통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KBS노동조합 강동구 위원장은 18일 저녁 "무죄 판결에 대해 보고받았으나 휴가중이라 답변하기 힘들다. 19일 통화하자"고 했으나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법정 투쟁 앞서 언론인들이 현장에서 언론장악 시도 차단해야"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긴 하나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복직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이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힌 데다, 본격적으로 진행될 해임무효소송 역시 최종 결론이 잔여임기인 11월 내에 나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현석 전 KBS사원행동 대변인은 "해임무효소송에서도 승소하게 되면 대통령의 KBS사장 해임이 불법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복직 여부를 떠나서)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역사적 의미"라고 평가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청와대 모 관계자는 정연주 사건에서 패소해도 '돈으로 물어주면 되지 않느냐'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 정권과는 법적 투쟁을 하기에 앞서 언론종사자들이 현장에서 치열하게 언론장악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언론인들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어보고, 언론장악 시도를 철저히 차단하는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연우 민언련 공동대표는 "이번 사건은 정연주 사장 개인의 권리만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이다.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사 사장을 무리하게 쫓아냄으로써 국민의 방송을 특정 정권의 방송으로 전락시켰다"며 "향후 정권, 방통위에 정치적·사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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