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 문제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대표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해야 하는 여러 투수들이 잇따라 수술대에 오르거나 부상 치료 후 재활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 김인식 감독을 위시한 대표팀 코칭스태프 입장에서 오승환 카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기 어려운 카드임에 틀림없다.

특히 지난 2013년 WBC에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든 이후 한국 야구의 자존심 회복이 절실한 이번 대회에서 오승환이 합류하고 안 하고는 우리 대표팀이 갖는 무게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원정도박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인 오승환이 KBO주관으로 치러지는 WBC 무대에 서는 것이 원칙에도 맞지 않고, 부정을 저질러 팬들을 실망시킨 선수에 대해 KBO가 WBC 출전을 계기로 은근 슬쩍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완 불펜 오승환.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참고로 오승환이 KBO로부터 받은 징계는 오승환이 외국 리그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올 경우 KBO리그 경기의 50%(72경기)에 대해 출전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르자면 KBO리그 경기가 아닌 KBO가 주관하는 국제대회까지 징계의 효력이 미치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정도박 혐의로 실제적인 징계를 받은 KBO리그 소속 선수들과 달리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선수생활을 이어간 오승환이, WBC에 태극마크를 유니폼에 달고 경기에 나선다는 것은 형평성 논란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오승환은 지난해 11월 발표된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서도 제외됐고, 지난 4일 있었던 대표팀 엔트리 구성을 위한 회의에서도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KBO나 대표팀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입장이지만 여론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오승환 측의 입장에서 보면 올해 WBC는 출전을 해도 욕을 먹고, 안 해도 욕을 먹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오승환 측은 물론 소속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 역시 오승환의 WBC 차출에 대비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좀 냉정하게 생각하면 오승환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이번 WBC 출전을 고사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다가오는 2017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팀 내에서나 메이저리그 전체를 놓고 볼 때 자신의 입지를 더욱 더 공고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오승환은 최근 ESPN이 보도를 통해 발표한 메이저리그 불펜 투수 랭킹에서 9위에 올랐다. ESPN은 세인트루이스 구단의 오승환 영입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높은 ‘가성비’를 가진 영입이었다고 평가했을 만큼 오승환의 활약은 분명 두드러진 것이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완 불펜 오승환.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메이저리그 불펜 투수들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수준인 79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면서 탈삼진을 무려 108개를 잡아냈다. 볼넷은 18개에 불과했다. 팀의 마무리 투수 로젠탈의 부진을 틈타 19세이브를 올리며 최고의 공헌도를 보여준 오승환에 대해 언론의 이런 평가는 당연한 평가다.

그 결과 2017시즌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의 각 포지션별 주전선수를 언급하는 미국 현지 언론 보도 가운데 주전 마무리 투수 자리에 오승환이 아닌 다른 선수의 이름을 올려놓은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승환이 WBC 출전대신 세인트루이스의 2017시즌 일정에 맞춰 몸을 만든다면 2016시즌을 능가하는 성적을 올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세인트루이스와 오승환의 계약기간은 2017시즌으로 종료된다. 오승환이 작년 1월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할 당시 구단은 "오승환을 계약 기간 1년, 옵션 1년의 조건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첫 시즌 메이저리거 신분을 보장하면서, 활약 여부에 따라 구단이 2017시즌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1+1' 조건이었다. 계약규모는 2년간 총액 1천100만 달러(우리 돈 약 130억원)를 받는 계약이었다.

오승환이 구단과 합의한 '1+1년'은 일정 수준의 기록을 달성할 경우 계약이 자동적으로 연장되는 '베스팅 옵션' 계약이며, 오승환은 2016시즌 계약에 명시된 성적 관련 옵션을 대부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오승환 측에 이미 재계약 의사를 알려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내년에 FA가 되는 오승환과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싶다는 의사를 미리 내비친 셈이다.

이쯤 되면 오승환에게 이번 시즌 활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이 된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완 불펜 오승환. [AP=연합뉴스 자료사진]

WBC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여정이 어디서 마무리가 될지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다. 만약 조기에 탈락한다면 오승환의 2017시즌 준비에 큰 영향이 없겠지만 한국이 승승장구하게 된다면 오승환이 팀을 떠나 있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지게 된다.

그의 대표팀 차출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런 논란은 일단 오승환이 대표팀 차출에 응한다는 전제 하에 이어지는 논란이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구단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고, 오승환 측의 입장에서도 과연 WBC 출전이 마냥 달가운 일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차라리 오승환이 먼저 WBC 출전을 고사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원칙 파괴논란이나 형평성 논란을 차단하면서 스스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즌 준비를 좀 더 충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이기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2017년 한해 오승환의 활약을 지켜보며 힘을 얻을 야구 팬들도 만만치 않게 많을 것임을 감안하면 그 역시 WBC 참가에 못지않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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