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각 당이 조심스럽게 대선준비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관심을 끄는 것은 대선후보들의 움직임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거취와 소위 제3지대의 모양새가 아직 불분명하지만 기존 정당은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후보를 가진 민주당의 당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금은 탄핵을 마무리하고 적폐 청산에 주력해야지 당내 경쟁할 때가 아니라 일갈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힘쓰면서 좋은 후보를 고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당연하다. 정당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을 탓할 수 없다.

손 맞잡은 야권 대선 예비주자들(연합뉴스)

경선다운 분위기가 형성된 곳은 아직 민주당뿐이다. 촛불정국을 통해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민주당의 경선은 한결 흥미롭다. 문재인 전 대표가 당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지지율까지 단연 앞서면서 자칫 싱거운 판이 될 뻔했었다. 민주당으로서는 호재를 만난 셈이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표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던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이 얼마 전부터 주춤하고 있다. 조사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18%에 육박했던 지지율이 10%에서 12%사이에 머물고 있다.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이 주춤거리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인을 두고 한 지점에서 완전 정반대의 의견이 맞선다는 점이다.

한 가지 분석은 이 시장이 '비문연대'를 시도하는 등 '문재인 전 대표와 대립해서'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분석은 '문재인 전 대표와 차별화를 회피한 것'이 원인이라 본다. 실제 이 시장은 '비문연대' 논란이 벌어졌을 때 안희정 지사의 공격을 받고 부랴부랴 '나는 문재인과 다르지 않다'는 글을 올려 갈등을 무마했다.

필자는 후자가 원인이라고 본다. 이 시장의 지지율 상승 동력은 문재인 전 대표에 만족하지 못하는 비문 성향의 유권자들이다. 그런가하면 비문 성향 유권자 가운데 일부는 이 시장의 선명한 주장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지지를 유보한다. 그 이유는 뭘까? 이 시장이 민주당의 후보가 되는 것보다 문 전 대표의 '페이스 메이커'에 머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가장 커 보인다. 이 시장은 문 전 대표와 다르지 않다고 선언함으로써 이것이 괜한 의구심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준 것이다.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이 작성한 '개헌관련문건'이 일으킨 파동에 대한 이 시장의 반응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연구원의 문건은 그 내용과 배포방식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당의 입장이 아니라 특정 후보의 경선 승리를 거의 기정사실화한 후 해당 후보의 입장에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공당의 공조직이 벌인 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와 이재명 성남시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원순 시장과 김부겸 의원이 이 사태를 공당의 사당화로 보고 강하게 항의한 데 비해 이 시장은 아무런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자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이렇게 심하게 갈등하면 안 좋다"며 "당권을 가진 측이 일종의 어드밴티지를 갖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불공정을 받아들이자는 말이다. 올바른 사회는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한다. 미국이 사회적 유대감이 강하던 시절 도입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대표적 사례다.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오히려 당권을 갖지 않은 쪽에, 후발주자에게 어드밴티지를 주어야 한다.

당내 경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비판에 대해 정권교체를 위한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내부 총질하지 말자'는 소리도 들린다. 전형적인 강자의 논리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은 '이상열기'나 '타락' 같은 용어를 동원하고 선거법으로 옥죄어 바람선거를 막고자 무던히 애썼다. 변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경선 과열을 꾸짖는 것도 경쟁에서 앞서가는 후보가 변화 없이 무난하게 승리하기를 바라는 속내를 감춘 기만적인 행위다.

새로운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일종의 중우정치를 획책하는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후보자간의 상호비판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검증과정이다. 유권자들은 새롭게 드러난 사실로 부터 정보를 얻고,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고 후보자들의 능력을 간접 판단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더 좋은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과정 없이 주어진 이미지만 보고 판단하라는 것은 오늘날 강조되는 숙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마치 '경선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선언하기라도 하듯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노무현 후보가 선두주자인 이인제 후보를 날카롭게 비판할 때마다 당내 경선이니만치 지나친 공격은 좋지 않다는 당 중진들의 충정어린(?) 만류를 들어야 했다. 그들의 본의를 넘겨짚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 후보의 발목을 잡는 행위였다. 노 후보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국민경선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고, 대선승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동안 비교적 얌전한 움직임을 보이던 박원순 시장이 문재인 전 대표를 호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경선이 다시 볼만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정권교체를 앞세운 비판이 만만치 않다. 그 가운데는 적지 않은 사람이 자신은 중립이라고 한다. 좀 솔직해져야 한다. 민주당 경선 열기가 사그라지면 민주당도 죽고 민주주의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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