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천일이 되었다. 그러나 매일이 1일이라는 유가족의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틀 전이었다. 1월 7일 새해 첫 주말, 광화문에는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그 자리에는 생각지도 못한 얼굴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세월호 생존자인 동시에 세월호 희생자의 친구들이었다. 무심한 세월은 누구도 예외로 비켜가는 일이 없어서 친구들은 여전히 고2인데 그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 있다.

살아온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세월호를 진실규명을 둘러싼 온갖 방해와 공작에 아이들은 생존에 짐을 지고 살아왔다. 친구를 잃은 것만으로도, 그 참사를 함께 겪었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마음에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덧씌워진 이중의 고통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엄마 아빠가 진실규명을 위해 애를 쓸 때에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000일, 박근혜 즉각퇴진!을 위한 11차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단원고 생존 학생들과 포옹하며 서로 위로하고 있다. ©News1

얼마 전 EBS 다큐 ‘스무 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봤던 친구들의 얼굴도 보였다.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 천천히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무엇보다 또렷하게 들렸던 말은 “저희는 모두 구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출했다”라는 대목이었다. 세월호에서 빠져나온 마지막 생존자 박준혁 군의 구조장면 또한 그랬다. 바다 위로 떠오른 아이를 해경이 아닌 어업지도선이 건져내는 장면이 화면에 담겨 있다.

그리고 “우리와 너희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던 사람들 다 찾아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편지 읽기를 마쳤다. 이어 유가족들이 올라와 무대 위의 생존학생들을 한 명씩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지금껏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할 때에 한결같이 2학년 몇 반 누구라고 했다. 친구들은 아직도 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줄곧 단원고 2학년 몇 반 누구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영원히 친구들과 함께이기를 바라는, 그럴 수밖에 없는 슬픔 때문일까. 아이들은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그때의 모습이 아닌 친구였던 고2때의 얼굴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인 아직은 어린 마음들이었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000일, 박근혜 즉각퇴진을 위한 11차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들의 얼굴이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그리웠을까. 아이들은 “답장이 오지 않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꺼져 있을 걸 알면서도 괜히 전화도 해 본다”는 고백이었다. 참 부질없는 일이지만 그리우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그 그리움과 눈물이, 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부질없는 일들이 해낸 것은 컸다.

어찌 그 눈물이 그들만의 일이었겠는가. 세월호에는 누구도 버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이, 성별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이 추운 겨울에, 11차까지 오는 촛불 집회를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이 눈물이었다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눈물과 그리움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눈물로 이뤄낸 기적이었다. 공감이 해냈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더니 세상은 메마르지 않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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