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복지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하는 휴먼뉴딜이 필요하다”

중도실용주의를 국정절학으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8월 안으로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론’(가칭) 해설서를 발간할 예정으로, 구체적인 방향은 친서민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오늘(14일)치 조선일보가 6면 <“피부에 와닿게”… 정부 ‘親(친)서민정책’에 건다>를 통해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정치면 한 면을 다 털어 청와대의 해설서 발간 이유, 준비 과정, 들어갈 내용 등을 언급한 뒤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나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정치구호가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과 한국적 상황에서 적실한 정책 노선이라는 점을 이론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고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또 “중산층이 두터운 항아리형 사회 건설을 위한 사회 통합과 정부와 국민 간의 활발한 소통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며 “갈수록 분배구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중산층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복지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하는 휴먼뉴딜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8월14일치 6면(정치)
어딜봐서 ‘복지 뉴딜’?

그렇다면 휴먼뉴딜 정책을 목표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내년 복지 예산은 어떨까?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2010년 예산요구안’을 보면 예산 삭감의 주요 대상은 사회 취약계층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줄여 보건산업을 육성하는 것으로 ‘친서민정책’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이다.

2010년도 보건복지가족부의 예산안을 보면 증액분 3조4,853억원 가운데 예산은 1조1,971억원으로 전년대비 6.1% 증가, 기금은 2조2,883억원으로 2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체 예산의 증액에도 불구하고 사회 취약계층 지원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정부는 보건복지 예산 삭감액 4,392억원 가운데 사회복지분야 예산 중 △기초생활보장 예산 2,589억원(3.2%) △사회복지 일반 예산 1,483억원(23.7%) △보건의료 예산 319억원(△3.3%)을 삭감했다.

또 사할린 한인 생계비 지원 예산 27억원(△32.7%) 삭감뿐 아니라 지방공공병원 예산 등 공공보건의료 부분 예산을 대폭 축소했으며, 장애인 의료비 지원(107억원) 및 의료급여 대불사업은 100% 전액 삭감했다. 또한 저소득층 기초생활보장 위한 주거급여 대상 7천여명을 축소하였고, 신빈곤층 대응을 위한 한시생계구호 4,181억원(100%)은 전액 삭감한 반면 저출산 고령사회 극복 국민인식개선을 위한 홍보비는 110억원 (395%) 증액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정부의 2010년 보건복지 예산 편성지침의 기본방향은 저출산․고령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예방․능동적 복지투자 및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 내실화를 표방하였지만 실제 예산안에는 빈부격차 해소·저출산 극복 관련 예산은 삭감하고, 증액으로 왜곡 보고하는 행태를 자행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또 “대표적인 MB일자리 사업인 민생안정전문요원 사업의 홍보비·공무원 간담회·특근매식비 등이 포함된 운영예산이 4억원이나 순증되면서 기초생활급여 예산에 포함되었다”며 “귀족예산, 대기업 예산을 위해 취약계층 지원을 대폭 삭감하는 MB정부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4대강 살리기 등 대형 국책사업에 예산 집중 투입”

▲ 한겨레 8월14일치 1면(종합)
한겨레도 오늘치 <감세·4대강으로 나라살림 빠듯 취약계층 예산 4300억 깎는다>을 통해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데도 4대강 살리기 등 대형 국책사업에 예산이 집중 투입되면서 복지예산 증가가 소폭에 그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의 발언을 통해 “감세정책으로 정부 재정이 줄어든 상태에서 4대강 살리기 등에 돈이 집중되다 보니, 정부가 ‘경기가 좋아진다’는 장밋빛 전망을 앞세워 힘없는 취약계층 예싼을 집중적으로 삭감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밝힌 사회 취약계층 예산 삭감을 비롯한 내용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면에서 보건복지부의 ‘10대 서민정책’을 전하며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의 최저생계비를 127만원(4인 기준)에서 133만원으로 인상하고, 기초생활 보장 부양 의무자 기준도 완화했다”며 “장애인 복지지원 확대, 서민의료비 경감, 일자리 지원 확대 정책도 시행중”이라고 보도했다.

오늘치 조선일보만 보았더라면 청와대는 중산층 복원과 복지에 대한 선제적 투자, 제도 개선에 앞장서는 ‘휴먼뉴딜’을 강조하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정부의 이러한 정책을 실현하는 데 앞장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보도하지 않은 그 이면에는 사회 취약계층의 예산을 대폭 삭감과 같은 친서민정책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가려져 있었다.

청와대의 중도실용론에 대한 해설서가 나오기도 전에 대대적으로 지면을 할애해 준비 상황을 전하고 나선 오늘치 조선일보를 보면, 신문인지 정부의 정책홍보지인지 쉽게 구분이 가질 않는다. “소통하자”는 국민들의 수차례 요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청와대가 해설서를 통해 정부와 국민 간의 활발한 소통을 강조한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청와대의 행태를 무비판적으로 일괄 찬양하고 나선 조선일보의 행태도 문제이다.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말하는 ‘서민’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친서민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재래시장을 방문해 상인의 손을 잡아주고, 어묵을 먹고, 과수원을 방문해 미생물을 찾고, 쌀가공업체를 방문해 쌀국수를 먹는 등의 행보를 보인 이명박 대통령이 몇 차례의 행보만으로 모든 서민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 착각하지는 않을지 우려가 앞선다. 몇 백원 오르는 전기, 가스 요금에도 힘들어 하며 전전긍긍하는 수많은 서민들의 마음을 진정 알기나 할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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