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중인 드라마의 흐름을 뚝 끊고 광고를 내보내는 제도를 굳이 정권 말에 강행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지상파 방송의 배를 불려 대선 국면에서의 보은(報恩)을 노린다는 해석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친여(親與)로 분류되는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방송위의 본색이 여실히 드러났다.

과거에도 제기됐던 중간광고 도입 주장이 그때마다 무산된 것은 무엇보다 시청자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TV 광고는 채널을 돌리지 않는 이상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앞으로 방송사들은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두기 위해 한층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으로 화면을 채울 게 뻔하다.”

중앙일보 11월3일자 사설 가운데 일부다. “과거에도 제기됐던 중간광고 도입 주장이 그때마다 무산된 것은 무엇보다 시청자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이 눈에 띈다. “앞으로 방송사들은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두기 위해 한층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으로 화면을 채울 게 뻔하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 중앙일보 11월3일자 사설.
1973년 2월8일자 중앙일보 사설을 보면

최민희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의 ‘이중성’까기 거론하며 중간광고 허용방침을 강하게 질타한 중앙일보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믿고 싶긴 한데 솔직히 별로 믿음이 가진 않는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럴 땐 이렇게 말하고 저럴 땐 저렇게 말하는’ 중앙의 태도가 너무 극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1973년 2월8일자 중앙일보를 보자. <방송법의 개정>이라는 사설이 실려 있다. 중간광고에 대한 입장도 있는데 이런! 요즘 중앙일보가 전개하는 있는 논조와는 완전히 다른 ‘정반대’의 입장이 실려 있다. 중앙은 1973년 중간광고 폐지 방송법 개정을 앞두고 상업방송을 위해 과도한 광고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했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 중앙일보 1973년 2월8일자 사설.
“상업방송에 있어 광고방송의 규제는 그것도 위에 말한 방송의 공익성의 제고를 위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광고내용의 질이나 방법에 있어 어떠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광고방송의 단위나 회수에 있어 어느 정도의 제한을 가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도를 지나쳐 광고방송 시간의 총량이나 내용면 전체에 걸친 위축을 가져오지 않도록 깊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광고방송이란 바로 상업방송의 존립의 지반이며 그렇기에 광고방송에 대한 일방적인 제한은 상업방송의 문을 닫게 하는 위협이 된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TBC가 소유했을 땐 중간광고 ‘허용’…없으니 ‘반대’

“과거에도 제기됐던 중간광고 도입 주장이 그때마다 무산된 것은 무엇보다 시청자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라는 지난 3일자 중앙일보 사설과 “광고방송에 대한 일방적인 제한은 상업방송의 문을 닫게 하는 위협이 된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1973년 2월8일자 사설이 참 묘한 대립을 이룬다.

광고방송에 대한 중앙일보의 ‘입장’이 바뀐 것인가. 입장이 바뀐 건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왜 입장이 바뀐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광고방송에 대한 일방적인 제한은 상업방송의 문을 닫게 하는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던 중앙이 “과거에도 제기됐던 중간광고 도입 주장이 그때마다 무산된 것은 무엇보다 시청자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으로 입장이 바뀌었다면 무언가 ‘계기’가 있을 것인데 검색을 해봐도 자료를 뒤적여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런데 유일한 단서가 하나 있다. 1973년 당시에는 중앙일보가 TBC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TBC를 소유하고 있을 때 중앙은 중간광고를 '폐지'하려는 정부 방침에 반대를 했고, TBC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지금, 중간광고를 '도입'하려는 정부 방침에 반대를 내고 있는 것이다. 1973년 2월8일자 중앙일보 사설은 신문사가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사설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일자 중앙일보 사설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년에 신문·방송간 소유·겸영규제 해제를 통해 신문사가 방송사를 소유했을 때 신문사들의 입장이 어떻게 달라질까.”

예상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중앙일보. 그렇게 ‘열을 올리며’ 최민희 방송위 부위원장의 ‘이중성’을 질타했는데 조심하는게 좋겠다. 중앙일보의 그 질타가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중앙의 입장이 바뀐 데 대한 ‘해명’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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