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차기 대선 전에 개헌안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소추 인용이 빠르면 2월말이나 늦어도 3말로 이에 따른 조기 대선은 4월말이나 5월초가 될 게 확실시 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차기 대선은 불과 5개월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가 강조하는 대선 전 개헌안 합의는 필요성을 떠나 가능한지부터 따져보는 게 순서일 듯싶다. 조선일보가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염두에 두고 대선 전 개헌안 합의를 주장한 것일 수도 있다. 문 전 대표는 개헌에 가장 부정적이며 또한 현직 대통령이 개헌에 적극적인 사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황을 감안하더라도 조선일보의 대선 전 개헌안 합의 주장은 날림으로 개헌안을 만들자는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6일자 조선일보 사설.

6일자 조선일보는 <개헌특위, 최소한 대선 전에 개헌안 합의 도출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해당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최근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반대를 압도하고 있다"면서 조기대선 전에 개헌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조선일보는 "이제 모든 정치 세력이 시기와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개헌 자체엔 찬성하게 됐다"면서 "지금 시대정신은 통치가 아닌 협치, 집권이 아닌 분권, 싸움 자체가 목적인 정치 탈피, 여야의 국정 동반, 대한민국은 '안 되는 나라'에서 다시 '되는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데 어떤 체제가 좋은지는 다른 정략만 없으면 결코 합의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면서 "개헌 시기는 별개로 하더라도 최소한의 개헌안 합의만은 대선 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개헌안 합의가 지연되는 경우를 '정략, 총론 합의 후 각론 파국을 노리는 계산'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국정공백 사태 속에서 제3지대를 중심으로 개헌을 주장하는 대권주자들이 등장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주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개헌에 뜻을 같이하는 모양새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은 더 이상 한국 사회에 맞는 옷이 아니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국회에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설치돼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시작됐다. 5일 개헌특위가 첫 회의를 갖기도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합의된 개헌안을 만드는 것에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개헌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일인 만큼 충분한 논의과정과 의견수렴을 거쳐 이뤄져야 한다. 개헌을 전면에 내세운 대권주자들도 대부분 중대한 사안인 만큼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의견수렴 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대선 전 국회가 개헌안을 만들어내라고 주장한다. 물론 국회 개헌특위가 개헌안을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공청회, 토론회 등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와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창구마련이다.

또한 정계개편용 개헌, 즉 권력의 합종연횡만을 가져오는 개헌도 경계해야 한다. 게다가 통치구조 변화에 걸맞은 선거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의 개헌은 의미가 없다. 단순히 권력이 중심이 되는 정계개편용 개헌은 또 다른 제왕적 권력을 낳을 뿐이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개헌안을 마련해 권력구조만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의원내각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부터 다져놔야 한다. 개헌안 마련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먼저라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국회 개헌특위도 개헌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고 있다.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헌은 발의에서부터 토론, 결론, 이런 일련의 프로세스가 진행될 수 있는 기본적인 정치적 안정, 시간적 여유 등이 있는 조건을 택해서 제대로 된 절차로 진행돼야 한다"면서 "발의, 토론 등을 전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국민적 기구를 제안하고, 여야의 공동관리 하에 각종 시민단체, 학계, 일반국민 개개인까지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성 교수는 "이러한 절차를 통해 최소한 6개월 이상은 집중적인 토론과 합의 형태의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것이 민주 원리에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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