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정부여당과 조중동이라는 막강한 카르텔에 홀로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새로운 인물을 얻었습니다. 그저 마주 서는 용기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정권의 행정력과 보수언론의 강력한 지원사격에 정면으로 부딪혀 승리를 일궈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무기는 미니홈피에 올라온 글 한편,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단지 서너 개의 문장이었습니다.

네, 김민선 이야깁니다. 김민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쇠고기수입업자의 말을 그대로 믿자면 위와 같은 분석은 현실성을 거뜬히 획득합니다. 김민선이 문제의 글을 게재한 게 작년 5월, 계속되는 쇠고기 정국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와 보수언론이 총력전을 펼치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수입업자는 김민선의 발언으로 인해 15억 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합니다. 김민선, 그야말로 대단한 선동능력의 소유자 아닙니까.

다행히도 쇠고기수입업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민선 발언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덜 먹게 되었다는 의견은 전체 응답자의 15.8%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이번 소송건이 없는 상태에서 설문이 이루어졌다면 이 비율은 훨씬 적었을 겁니다. 어쨌든 절반을 넘는 53%는 소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김민선 발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31.2%나 됐습니다. 아직 대한민국에 광우병이 만연하지는 않은 듯해 일단 안심입니다.

▲ 배우 김민선. ⓒ 오마이뉴스 문성식
김민선, 대단한 선동능력의 소유자?

이번 사태의 추이는 과연 소송이 법적인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으로 보입니다. 김민선의 글이 미국쇠고기 판매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과연, 증빙할 수 있을까요?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한 독백에 가까운 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도대체 합리의 근처에라도 가는 일일까요?

법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법이 너무 중요하단 걸 알지만, 이번 사태와 같은 ‘아웃오브 이성’에 대해서는 일단 전문가들에게 맡겨둡시다. 쇠고기수입업자가 이성을 회복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겠지요. 법원의 상식수준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오르는 순간입니다. 판사님들이 기각이라는 유용한 제도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정작 제가 하고픈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평소, 아무리 대한민국이 ‘예능 공화국’이라지만 연예인을 ‘공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여러모로 과녁을 빗나간 말이라는 생각을 왕왕 했더랬습니다. 공적인 일의 기준이 상이할 수 있겠지만, 단지 얼굴과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공인으로 규정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공직에 종사하며 세금으로 활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 이상 연예인은 단지 잘 알려진 유명인일 뿐입니다. 물론, 언어는 스스로 그 뜻을 확장해 가는 것이 상례이기에 연예인을 비롯해 사회적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진 이들을 ‘새로운 공인’의 범주에 넣을 수는 있겠습니다.

다른 연예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작년 쇠고기 정국에서 광우병에 대해 비판적 코멘트를 남긴 것은 비단 김민선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준기, 정찬, 이동욱, 김희철, 김지우 등을 비롯 줄잡아 십여 명 이상의 연예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비판의 대열에 합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떨까요, 이것은 공인으로서 정당한 사회적 비판기능을 수행한 것일까요. 글쎄요, 작년의 상황은 연예인들이 부담을 덜고 국민으로서 발언할 수 있는 아주 잠시 열린 임시적 공간이었을 뿐입니다.

이는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정국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평소 대중들에게 비칠 이미지를 우려해 정치적으로 읽힐만한 언행을 극도로 자제하거나 정치적 입장이 아예 없는 것처럼 행동하던 연예인들이 대거 조문정국에 대해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전국민의 6, 70%가 반대하고 애도를 표하는 비교적 ‘안전한’ 사안들에서도 번번이 이들의 발언과 행동은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여러 기획사들이 소속 연예인들의 언행이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줬지요.

‘정치색을 드러내면 끝장’이라던 선배 연예인들보다는 표현의 자유의 폭이 넓어졌다지만 여전히 연예인들의 자기표현이 지나치게 좁은 틀 안에 갇혀있다고 느끼는 건 저 뿐일까요. 그들은 굳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신변에 관한 발언 한마디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대중과 미디어가 강요하는 특정 이미지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연예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음날 국민 절반 이상의 대화소재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만큼 그들의 영향력이 막대하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연예인, 시민으로서 표현의 자유 가질 수 없나?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명한 지식인의 서슬퍼렇게 날카로운 비판보다 대중매체를 통해 툭툭 던져지는 연예인의 한 마디가 더 큰 영향력을 갖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체의 다변화와 지식유통망의 급격한 변화는 앞으로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질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사태를 두고 한 전여옥 의원의 말("연예인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존중하지만 동시에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 자기 책임을 져야 한다")은 일리가 있습니다. 물론, 전 의원의 발언은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을 지지하는 차원이 아니라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수입업자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맥락을 찾지 못한 발언이며, 표현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부적절한 행태입니다.

‘연예인들이 사회적 발언을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건 현재 한국의 문화적 지형에서는 분명, 오버일겁니다. 그러나 ‘연예인들이 사회적 발언을 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어떨까요. 연예인의 입을 닥치게 만드는데 사회적 역량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연예인 역시 자연인으로, 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사회인의 일원으로서 자연스럽게 사회현안에 대해 발언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들 역시 대중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연예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시민입니다. 연예인들이 가닿을 수 없는 판타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우리들의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우리사회, 이제 그만큼은 ‘선진화’되어도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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