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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을 타고 재관람을 하는 관객이 늘어나는 ‘라라랜드’는 표면적으로 보면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갖는다. 서로 티격태격 다투기 바쁘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은,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의 피아노 솜씨를 칭찬하는 미아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세바스찬의 태도에서 관찰할 수 있다. 연인으로 발전할 두 남녀 세바스찬과 미아의 첫 만남이, 교통체증 가운데서 경적을 울리고 손가락 욕을 날리는 불쾌한 만남이었다는 점도 로맨틱 코미디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데 ‘라라랜드’는 로맨틱 코미디의 DNA를 ‘일부’만 이어받았지 ‘전부’ 계승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남녀의 사랑이 아름답게 꽃피는 ‘결실’ 혹은 ‘결혼’에 골인하는 클라이맥스, 해피엔딩에 집중하는 경향을 갖는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사랑의 클라이맥스에만 천착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부제들이 사계-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라는 건 사랑의 결실이 다가 아니라 흥망성쇠가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겨울’은 두 남녀의 만남이 썩 유쾌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크리스마스에 해고된 세바스찬에게 미아의 칭찬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사랑이 싹을 틔우기는커녕 남녀 서로가 비호감의 감정을 갖는 계절이 겨울이다. ‘봄’에 들어서야 세바스찬과 미아의 사랑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데, 어딘가 어색하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영화였다면 세바스찬과 미아가 처음으로 입맞춤하는 장면을 끊을 리가 없다. 아주 달콤하면서도 감미롭게 두 남녀의 입맞춤을 영상에 옮기기 바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라라랜드’에서는 자그마치 세 번이나 입맞춤하려는 찰나의 순간이 번번이 방해받는다.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 마냥 영화는 두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을 뜸들이기 일쑤인데, 이는 이들의 사랑이 어렵게 성취됨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사랑이 봄-여름이 다가 아니라 가을과 겨울과 같은 소멸의 과정이 있음을 어렴풋이 암시한다.

부제 ‘가을’의 마지막 장면을 되돌아보면 미아가 천문대 아래에서 을씨년스럽다고 표현하는 대사가 있다. 그런데 미아가 그렇게 표현한 천문대는 그냥 천문대가 아니라 ‘봄’에 세바스찬과 미아가 사랑으로 맺어진 장소, 첫 키스를 나눈 장소다. 처음으로 사랑의 성취를 이룬 장소를 면전에 두고 그런 표현을 한다는 건 이들의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라라랜드’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통상적인 달콤한 사랑의 결실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여신 포르투나의 ‘운명의 수레바퀴’마냥 사랑의 흥망성쇠를 사계절을 통해 직시하도록 만든다. 사랑은 달달한 당의정 같은 달콤하고 가슴이 쿵쾅대고 설레는 방망이질이 다가 아니라, 반드시 유효기간이 있다는 사랑의 현실을 직시하게끔 만든다.

하나 더, ‘라라랜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파고들었을 때의 ‘기쁨’과 ‘절망’을 미아와 세바스찬이라는 두 남녀 주인공을 통해 대비효과 마냥 대극으로 보여준다. 먼저 절망에 해당하는 인물은 세바스찬이다. 만일 그가 계속 정통 재즈만 고집했다면 현재와 같은 대성공은 거두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현대적인 감각의 재즈를 내면화했을 때에야 세바스찬은 지난겨울 식당 연주자에서 쫓겨나는 식의 수모를 더 이상 겪지 않게 된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다른 꿈을 향해 정진할 때 역설적으로 다른 성공의 기회가 찾아오는 캐릭터가 세바스찬이다.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하지만 미아가 세바스찬처럼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면, 미아는 세바스찬의 경우와는 반대로 배우로 뜰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미아가 배우의 꿈을 포기하려고 할 때 세바스찬의 부추김 덕에 배우로 대성공을 거두게 되는 것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은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는 ‘꿈은 이루어진다’의 실현이면서 동시에 남자친구 세바스찬의 경우와는 대극에 놓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라라랜드’는 미아의 경우만 놓고 본다면 분명 꿈의 성취에 대한 근사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성공을 이루는 방식이 반드시 꿈을 추구했을 때 따라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세바스찬을 통해 보여준다. 세바스찬이 키보드를 치는 시늉을 하는 콘셉트 사진을 찍을 때 그가 과연 행복해하던가? 꿈의 성취가 반드시 성공에 다다르는 사닥다리와 100% 직결되지 않는 현실을, 영화는 세바스찬을 통해 직시하도록 만들어준다.

미아가 배우로 대성할 수 있기까지는 세바스찬의 부추김이 있었어야 가능한 성취인데, 이는 영화 ‘아티스트’에서 페피가 조지를 구원하는-여성이 남성을 구원하는 방식에서 젠더를 뒤바꾼 방식-남자가 여성을 구원하는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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