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전설의 고향>이 시작됐다. <전설의 고향>은 그 자체로 전설이 된 공포시리즈이며, 작년에도 방송사에게 쏠쏠한 시청률을 안겨줬던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한국인 상당수는 <전설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전설의 고향>에는 단순한 인기 드라마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한 부문을 간직한 현대판 문화재적 성격까지 있다.

그래서 <전설의 고향>은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사람들은 <전설의 고향>에 보다 전통적일 것을 주문하면서도, 또 한국의 대표적인 공포시리즈로서 보다 참신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제작진도 고충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번에 시작된 <전설의 고향> 혈귀편은 너무했다. 어떻게 이렇게 ‘맹탕’으로 만들 수 있나? <전설의 고향>을 사랑하고 추억하는 국민들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질 정도다.

사람들은 저마다 <전설의 고향>에 다양한 것들을 요구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하나다. 바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공포. 공포에 대한 형상화가 어느 정도만 이루어져도 <전설의 고향>은 그 위상을 이어갈 수 있다. 거기에 그 공포가 우리 전통과 이어져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번 <전설의 고향>은 아무 것도 주지 못했다. 최근 납량특집드라마인 <혼>이 상당한 수준의 공포와 긴장감을 선사해주고 있다. <전설의 고향>은 그것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1편의 경우 밀려도 너무 밀렸다. 참패다.

▲ KBS 월화드라마 '전설의 고향' 홈페이지 화면 캡처. ⓒKBS

맹탕 요괴 맹탕 액션

극 초반 혈귀가 나타난 후 CG까지 동원한 액션 장면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시선을 확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웬걸? 시선을 잡기는커녕 하품만 나왔다. 긴박한 액션과 추격이 이어지는데 어쩌면 그렇게 맥이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액션으로서도 무의미했을 뿐만 아니라, 공포심도 전혀 유발하지 못했다.

<혼>은 초반 추격 장면이 상당히 긴박했다. 여주인공이 빙의되는 과정도 인상 깊었다. 역동적인 촬영과 공들인 CG로 초반에 시청자의 시선을 붙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후 살인범을 잡는 과정에서도 긴장감이 잘 표현됐다. 몇몇 귀신은 어이없었지만, 대체로 귀신의 표현도 공포심을 유발하도록 잘 배치했다. 이미 지난 주에 <혼>을 본 사람으로서 <전설의 고향>은 실소만 터져 나올 뿐이었다.

<전설의 고향>의 추격신과 액션신은 아무런 고민도 없어보였다. ‘어떻게 해야 시각적인 충격을 선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강렬한 느낌의 그림을 만들어낼까’라는 고민이 전혀 없어보였다는 뜻이다. 정말 교과서적으로, 너무나 무의미하게 삿들이 배치됐다.

백미는 요괴였다. 어떻게 가장 중요한 요괴를 이렇게 맹탕으로 표현할 수 있나. 무작정 과장된 표정만 짓고 눈을 희번득거리며 이빨만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나? 과장된 표정은 실소를 유발했고, 오락가락하는 귀신의 캐릭터는 몰입을 방해했다.

요괴가 이빨을 드러낼 때 불쑥 켜지는 파란 조명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게다가 공격성을 표현할 때 언제나 흉기가 되는 날카로운 손톱을 가슴 앞에 부각시키는데, 이건 물릴 만큼 봐왔던 상투적인 표현이다. 이미 1990년대에도 비웃음을 샀던 표현방식인데, 2009년에 그것을 또 보게 될 줄이야!

황당한 신음소리

더 황당한 건 신음소리였다. 남녀가 엉겨 붙어 내는 신음소리. 베드신도 툭하면 나왔다. 어떻게 지상파 드라마를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나? 너무 선정적이었다. 무조건 자극적이기만 하면 시청률이 오를 거라고 생각했나?

정작 중요한 요괴와 요괴가 펼치는 액션신은 신물이 날 만큼 진부하게 표현하더니, 여성을 체벌하는 장면에선 창조력을 발휘했다. 며느리를 매달고 때린다는 설정이 등장한 것이다. 자극적인 쪽으로만 연구한 것 같다. 노출과 자극의 고향?

요괴 캐릭터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숫처녀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에 개탄하더니 나중엔 왜 갑자기 비열을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그러더니 다시 순정의 사나이로 돌변하는 황당한 오락가락. ‘요괴를 표현할 땐 이러저러해야 한다’라는 도식성에 빠진 것이 그런 황당함을 초래한 주범으로 보인다.

덕분에 주인공 요괴의 캐릭터가 완전히 망가져 공포도 없고 드라마도 없는 작품이 돼버렸다. 게다가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 이하였다. 이것이 과연 드라마왕국이라는 한국의 미니시리즈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전설의 고향> 시리즈,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 도식성과 선정성의 안일한 결합은 불쾌함만 유발할 뿐이다. 선정성은 빼고 도식성은 뛰어넘어야 한다. <혼>이라는 사례도 있지 않은가. 신선한 표현방식에 전통적인 한을 담을 때 <전설의 고향>은 ‘드라마의 전설’로서 그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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