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채널 JTBC의 기자가 덴마크에서 은신 중이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현지 경찰에 신고하며 정씨가 체포됐다. JTBC <뉴스룸>은 2일 해당 뉴스를 보도하며 역대 최고시청률(11.35%, 닐슨코리아)을 경신했다.

이가혁 JTBC 기자는 31일 정씨의 은신처를 확인한 뒤 정씨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 기자에 따르면, 취재진을 알아챈 정씨는 이불로 창문을 덮는 등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 기자는 “(정씨가) 새로운 장소로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1일 오후 현지 경찰에 신고했고, 정씨는 현지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JTBC는 <뉴스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기에 앞서 SNS를 통해 사전 공지했다.

하지만 취재 보도의 영역이 아닌 JTBC 기자가 직접 경찰에 신고한 것은 ‘저널리즘 윤리’라는 기준에서 생각해 볼 문제가 적지 않다. <미디어스>는 언론학자들에게 '저널리즘 윤리'에 입각, JTBC의 취재 및 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2일 JTBC<뉴스룸> 보도 화면 캡쳐.

만약 정유라가 아니었다면?

한 언론학자는 ‘저널리즘 윤리’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다시 논의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건국대학교 박진우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널리즘 윤리에 대해 “‘언론인들이 보도를 위해 일부러 사건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원칙”이라며 “정유라처럼 대부분의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비난을 덜 받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겨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언론인들이 ‘저널리즘 윤리, 규범’을 만든 것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사건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원칙이)무너졌다. 앞으로 (기자가 신고로)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예를 들어,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 중인데 (기자의 제보로)체포된 경우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면서 “사회적으로 약자인 경우나 정치적인 대의명분을 가지고 대립하게 되는 세력의 일원에 대해 일방적으로 공권력이 투입될 때, (기자가 은신한 일원을 신고한다면) 후폭풍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이 상황을 구체화시켜 논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3일 <허핑턴포스트>에 올라온 넥스랩 박상현 이사의 글.

3일 <허핑턴포스트>는 넥스랩(NEX Lap) 박상현 이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JTBC의 보도와 관련해 올린 <JTBC가 언론계에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박 이사는 JTBC 취재 및 보도에 대해 “(JTBC가) 이제까지 규범으로 여겨져 온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가볍게 던져 버렸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며 “(JTBC는)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JTBC 기자가 정씨를 현지 경찰에 신고한 것에 대해 “그가 시민으로서 신고하기로 했다면 보도를 포기했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관찰자로 남아야 했다”면서 “그게 보도윤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자들이 스마트폰 카메라와 트위터로 무장한 일반시민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손발을 다 묶는 원칙을 지켜야 할까”라고 되물으며 ‘저널리즘 원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박 이사는 “JTBC가 ‘박근혜·최순실 문제’를 다루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저널리스트로서의 용기와 직업정신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JTBC의 정씨 보도가) 앞으로 한국언론에 중요한 선례를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 “이제까지 아무도 넘지 않았던 선을 넘었고, 열지 않았던 문을 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이 한 번 열리면 그리로 쓰레기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큰 문제 없음'

일부 언론학자들는 ‘국민의 알권리’란 점에서 JTBC의 취재 및 보도를 문제로 삼기는 어렵다는고 평가하기도 했다. 해당 취재와 보도가 ‘저널리즘 윤리’에 어긋났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성공회대학교 최진봉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해당 보도에 대해 “정유라가 명백한 범죄자이고, 도주의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정유라의) 신상에 대해 보도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면서 “(저널리즘 윤리 차원에서) 크게 문제가 될 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일 JTBC<뉴스룸> 보도 화면 캡쳐

최 교수는 최근 칠레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함정취재를 통해 방송된 칠레 주재 외교관 박모 참사관의 예를 든 뒤 “(해당 방송도) 논란이 되긴 했지만, 저널리즘 윤리에 어긋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라며 “JTBC의 정유라 관련 보도도 저널리즘 윤리로 비판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자들마다 이와 관련해서는 판단이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미디어연구소 김동준 소장은 “개운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JTBC가 정유라를 직접 찾아서 취재 보도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며 “신고를 한 기자도 한 사람의 국민이기 때문에 신고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널리즘 원칙’이란 게 뚜렷하지 않고 윤리적인 차원이기 때문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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